사자와 호랑이가 교배를 하면 라이거가 나오고 당나귀와 말이 교배하면 노새가 나오듯 염색체수가 같으면 이종간에도 번식이 가능할까? 답은 '아니오'다.

사람과 쥐똥나무,돼지와 고양이도 염색체수가 같다. 하지만 교배는 불가능하다. 사실 모든 동물들의 최초 배아의 형태는 비슷하다. 종이 달라도 공통된 조상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점차 핵분열을 하면서 DNA의 영향을 받아 종마다 다른 특성을 발현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자와 호랑이,당나귀와 말은 어떻게 이종교배가 가능할까? 종이 분화된 지 오래되지 않아 DNA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원숭이는 DNA가 98%나 일치하지만 교배가 불가능하다. 그만큼 이종교배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동물들이 배아의 형태가 비슷하듯 기업들도 설립 초기의 모습은 비슷하다. 하지만 업종,지리적 위치,종업원들 간의 유기적 상호관계에 따라 세포분열이 진행되고 설립 후 한두 해만 지나면 전혀 다른 DNA를 가진 회사가 된다. M&A(기업 인수 · 합병)는 이렇게 DNA가 전혀 다른 생물체들 간의 화학적 결합이다. 그만큼 성공 확률이 적다는 얘기다.

# 성급한 이종교배의 비극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는 같은 과에 속하는 생명체(기업)였다. 하지만 DNA는 전혀 달랐다. 독일의 다임러벤츠는 명문차의 대가였고 미국의 크라이슬러는 대중차의 대명사였다.

이 같은 차이는 1998년 두 회사의 합병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다임러는 고급차 시장의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규모의 경제 없이는 차세대 기술개발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크라이슬러는 고급차 제품라인이 없다는 점과 함께 아시아,남미 등으로의 수출 전략에 차질을 빚고 있었다.

그래서 양측의 '이종교배'는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최고의 궁합'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다임러 직원들은 크라이슬러의 자동차 품질을 업신여겼다.

크라이슬러 임직원 중에 독일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임직원 보상시스템,의사결정 프로세스 등 모든 게 달랐다. 두 회사는 결국 이 같은 차이를 줄이는데 실패해 2006년 결별을 선언한다.

기업 간 이종교배가 실패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1976년 국내 최초의 은행권 결합으로 관심을 모았던 서울은행과 신탁은행의 합병도 그랬다. 서울신탁은행이 새 사옥에 입주해 건물 앞에 '서울신탁은행'이라는 이름이 새겨졌는데,서울은행 출신 청소부는 '서울'이라는 글자만 닦고 신탁은행 출신은 '신탁'이라는 글자만 닦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다.

서울은행은 결국 외환위기를 버텨내지 못하고 하나은행에 인수됐다. PMI(인수후 통합 · post merger integration)가 M&A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래도 다른 DNA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DNA를 끊임없이 받아들이지 않고는 지속적인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게 생태계의 오랜 법칙이다. 여성의 몸속으로 들어온 정자 중 난관 깊숙한 곳에 도달하는 것은 500개 정도다. 이들이 새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는 후보군이다. 난자는 500개의 정자들을 어떤 원칙에 따라 선별할까.

가장 빨리 난자에 접근한 활동성이 뛰어난 정자를 고를 것 같지만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난자는 DNA 배열이 가장 자신과 다른 정자를 '간택'한다. 자신과는 다른 장점을 받아들여야 더 나은 종(種)을 생산할 수 있다는 난자의 본능이 이 같은 선택을 한다는 게 생물학자들의 분석이다.

이런 원리는 기업 생태계의 진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업 조직 내부의 힘만으로는 환경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 P&G가 찾아낸 빵집

P&G는 'R&D(연구 · 개발) 이종교배'를 통해 탄탄한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2002년 이 회사 마케팅 담당 직원들은 감자스낵 제품인 프링글스에 간단한 그림을 새겨 넣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실행이 만만치 않았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감자가 마르기 전 일정한 양의 식용 잉크를 재빨리 분무할 수 있는 기계를 확보해야 했다. 식용잉크를 별도로 개발해야 한다는 점도 난제였다.

P&G는 수소문 끝에 이탈리아 볼로냐에 위치한 한 빵집이 이미 비슷한 상품을 팔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어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볼로냐 지역 대학 교수에게 자사 제품에 활용할 수 있는 잉크젯 분무기의 제작을 의뢰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4년 미국 시장에서 첫선을 보인 그림이 곁들여진 프링글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P&G는 외부 아이디어를 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P&G가 내놓은 제품 중 외부의 아이디어나 기술이 포함된 제품 비중은 42%에 달한다. 이 회사가 내건 슬로건은 '전 세계 누구라도 P&G의 연구원이 될 수 있다'다.

송형석/유창재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