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락과 글로벌 경기침체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1998년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 후 10년여 만에 외화 차입에 나선다.

알렉세이 쿠드린 러시아 재무장관은 14일 각료회의에서 "재정적자가 악화됨에 따라 내년에 외화 차입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약 50억달러 규모의 유로본드를 발행해 외화를 조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7.4%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재정적자를 메우고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도 숨통을 터준다는 복안이다.

지난 10여년간 석유 가스 금속 등 보유 원자재를 바탕으로 고속 성장을 구가한 러시아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건 국제유가가 급락하기 시작한 작년 7월부터다.

블룸버그는 유가가 배럴당 147달러에서 40~50달러 수준으로 급락하면서 정부 재정 악화와 기업 경영난이 심화됐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원자재가 급락으로 작년 990억달러에 달했던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올해 300억~400억달러로 절반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3대 외환보유국이지만 루블화 가치 방어와 경제난 해소에 보유 외화를 대거 투입하면서 작년 7월 4627억달러이던 외환보유액이 지난달 말 3335억달러로 27%가량 줄었다. 단기 외화유동성이 악화되면서 루블화 가치도 미 달러화 대비 작년 8월 28.13루블에서 이날 33.40루블로 18% 이상 급락했다.

러시아의 해외 차입은 기업 살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다. 외화유동성 확보를 통해 은행의 기업대출을 활성화,기준금리를 낮추는 효과를 보겠다는 것이다.

외국 은행 부채가 많은 러시아 은행들이 돈줄을 죄면서 대출은 올 1~2월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러시아 기업과 은행의 외화 부채는 1300억달러 규모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