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섣부른 `경기 회복론'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단 급격한 경기 하락세가 둔화했다는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올해 2~3월 들어 실물경기 지표의 급락세가 멈췄고,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은 이런 기대감을 반영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를 경기 회복의 신호로 해석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또 다른 악재가 터질 불확실성도 상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이 3월 위기설을 키웠듯이 지나친 낙관론 역시 경기오판과 그릇된 대응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체감경기 당분간 어렵다"
15일 주요 경제 연구기관들에 따르면 지표상으로는 국내 경기가 올해 중순께 바닥을 치고 하반기부터 점차 개선되겠지만, 체감경기는 내년 이후에나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회복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올해 중 경기 회복을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때 이른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연구소는 "세계경제가 전례 없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며 "근거 없는 비관론이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침체를 가속하는 것처럼 성급한 낙관론 역시 경기 오판이나 그릇된 대응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지난주 발표한 `2009년 경제전망(수정)'에서 한국 경제가 상당기간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경고했다.

경기 저점은 올해 2~3분기일 수 있지만, 경기가 상승하는 것을 크게 기대하기 어렵기에 저점에 별다른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몇 가지 부분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현재는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려운 혼조세"라고 진단했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은 "경기가 조금 살아나더라도 우리나라 적정 성장률을 크게 밑도는 침체 국면은 지속된다고 봐야 한다"며 "어느 정도 회복세를 체감하는 것은 내후년부터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세계여건 전망 `불확실'
이런 경계론이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경제가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수출이 살아나기 어렵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19일 올해 세계경제 성장 전망치를 기존의 0.5%에서 -0.5~ -1.0%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IMF는 금융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없는 한 각국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진단했다.

세계 경제위기의 근원이 됐던 미국 주택시장이 조금씩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이를 확대하여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앤 크루거 전 IMF 수석부총재도 이날 롯데호텔에서 가진 세계경제연구원 초청강연에서 "봄의 신호탄은 있지만 아직은 봄 서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조금만 부정적인 충격이 나와도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 주택 가격에 군데군데 긍정적인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여러 가지가 일어나도 미국 소비자의 총수요 진작으로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의 동력인 중국 경제도 쉽게 반등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LG경제연구원의 박래정 연구위원은 "중국 경기가 정점에서 저점에 이르는 시간은 최소 3년"이라며 "2007년 2분기 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것을 감안하면 벌써 저점에 도달했다는 것은 이르다"라고 평가했다.

◇ 지표 개선 `반짝 효과' 가능성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자산가격이 상승 조짐을 보이는 점도 경기회복 낙관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달 초 달러당 1,560.0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15일 현재 1,330원대로 떨어졌고 코스피지수도 1,300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서울의 아파트매매 가격 역시 3월말 이후 2주 연속 올랐다.

일부 실물지표 개선도 경기회복론에 힘을 실어줬다.

2월 광공업생산은 전월보다 6.8% 늘어나 1987년 9월의 11.0% 이후 가장 높았다.

소비재 판매 증가율도 전월보다 5.0% 늘어나면서 1998년 2월의 5.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향후 경기국면을 예고해주는 선행지수도 15개월만에 상승 반전했다.

3월 무역수지는 46억1천만 달러로 월 단위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표 개선은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국내 증시의 상승은 세계 각국이 돈을 풀면서 풍부해진 유동성이 국내로 유입돼 나타나는 `유동성 랠리'로,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칠 경우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기에 후행하는 고용지표가 상당 기간 부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월 취업자 수는 작년 동월 대비 19만5천명이 줄어 1999년 3월(-39만명) 이후 최대폭 감소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외화유동성 확대로 환율의 하향 안정세가 예상되지만 글로벌 금융불안 여파로 원화 변동성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라며 "신용경색도 해소되지 않아 일반기업(BBB-)이나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이준서 기자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