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자산가들을 주로 상대하는 프라이빗뱅커(PB)가 은행원들의 선망의 대상에서 기피 보직으로 전락했다.

SC제일은행은 지난달 PB 사내 공모를 실시했으나 미달 사태를 기록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한때 경쟁률이 14 대 1까지 갔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내부 유명 PB들을 상대로 올해 6월 말 설립 예정인 서울 도곡PB센터(가칭)의 센터장을 물색하고 있지만 제의를 받은 몇몇 PB들이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의 기업은행 PB센터들은 지점의 병설 형태로 운영되며 비교적 소액인 5000만원 이상 있으면 이용할 수 있지만 도곡PB센터는 금융자산 5억원 이상의 자산가를 타깃으로 하는 독립적인 PB센터다.

이 은행의 한 PB는 "첫 순수 PB센터라 상징성이 큰 자리인데 지금 같은 시기에는 회사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실적을 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은행 측은 "아직 공모가 시작되지 않은 만큼 지원자가 나올지 안 나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PB는 사내 모집 시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것이 다반사일 정도로 은행원들이 가고 싶어하는 보직 1순위였다. 하지만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펀드와 부동산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며 고객들의 항의를 받는 일이 잦아졌다. 은행들이 전문성이 아니라 고객에게서 유치한 돈의 액수로만 PB들을 평가하는 풍토도 인기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PB는 "예전에는 펀드 판매를 통해 실적을 올릴 수 있었으나 이것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고객 돈을 유치할 수 있는 루트가 정기예금 등으로 사실상 좁아졌다"며 "은행들이 PB의 전문성을 판단할 시스템을 새롭게 갖추지 않는다면 이러한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