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중소기업 지원에 `올인'하는 가운데 과도한 중기대출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30조9천억 원 규모의 보증 전액에 대해 만기 를 연장해주고 보증심사 기간을 1주일 내로 단축하는 등 각종 정책을 통해 중기 살리기에 총력을 쏟고 있다.

우리 경제의 뿌리인 중소기업이 흔들리면 경기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중기지원이 지나치게 실적 위주로 흐르다 보니 제대로 된 심사 없이 대출이 무분별하게 이뤄져 앞으로 우리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평균 보증 심사 기간 3.8일
1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보증기관의 신규 보증서 발 급 건수는 13만6천962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7.1배에 달했다.

신규 보증 규모도 11조1천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2조3천억 원의 4.8배였다.

보증 신청건수는 이처럼 급증했지만 보증 심사는 절반 수준으로 단축됐다.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기존에는 5천만 원 이하는 5일, 5천만~ 1억원은 8일, 1억원 초과는 10일 이내 각각 심사했지만, 3월부터는 1억원 이하는 3일, 1억원 초과는 7일 이내 처리하도록 방침이 변경됐다.

이에 따라 건당 7~8일이 소요됐던 평균 심사 기간이 3.8일로 대폭 줄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빠른 시일 내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부실 가능성은 오히려 커진 셈이다.

실제로 올해 신용보증기금의 사고율(보증부실률)은 10%대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보의 사고율은 작년말 5.1%에서 올해 1월말 8.6%로 급증했으며 2월 말에도 8.1%를 기록했다.

다만 3월에는 보증을 대폭 늘리면서 부실률이 6.8%로 낮아졌다.

신보 관계자는 "예전 기준을 적용하면 추가 보증을 받기 어려운 업체들도 최근 심사기준 완화에 따라 보증을 받고 있다"며 "이런 식이라면 경제가 살아나도 올 연말부터 부실이 크게 늘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중에 경기가 나아지면 부실 보증에 대한 지적을 받을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 은행권도 실적 늘리기 `급급'
은행들이 중기의 신용위험(돈 떼일 위험 )은 여전히 높을 것으로 보면서도 중기에 대한 대출 문턱은 낮추겠다는 태도다.

은행들은 금감원과 맺은 외화지급보증 양해각서(MOU)상의 중기대출 비율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실제 은행권의 중기 원화대출 증가액은 2월 1조5천억 원에서 3월 2조1천억 원으로 늘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은 보증서를 받은 기업 위주로 대출을 해주고 있지만, 모든 대출을 100% 보증서 대출 로만 집행할 수 없다"며서 "부실 위험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말도 못 꺼낸다"고 말했다.

모 국책은행 관계자는 "작년 한 해 동안 지원한 금액을 올해 6월까지 집행하라고 하니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하고 대출을 해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시중은행들의 경우 대출해줄 우량 기업이 마땅치 않다 보니 매출이 100억 원인 기업에 10억원을 빌려주겠다는 은행이 줄을 섰다"고 전했다.

◇ 연체율 급증..부도업체수는 줄어
이러다보니 올해 들어 부도업체 수는 감소한 반면 중기대출 연체율은 올라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즉 `응급 수혈'로 한계 상황에 처한 기업들은 줄어들고 있지만, 원리금조차 갚지 못하는 기업 수는 늘고 있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부도업체 수는 작년 12월 345개에서 1월 262개, 2월 203개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부도율을 집계하는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은행권의 유동성 공급이 확대되면서 부도업체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은행권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올해 들어 가파른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기 연체율은 작년 6월 말 1.14%에서 작년 말 1.70%로 상승한 뒤 올해 1월 2.37%, 2월 2.67%로 뛰어올랐다.

3월 말 잠정치는 2.32%로 하락했지만, 이는 은행들이 분기 말을 맞아 연체채권을 대손 상각하는 등 연체 관리를 강화한 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다.

모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는 "해당 기업이 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면 추가로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연체율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 "경제 효율성 훼손 우려"
전 문가들은 현재의 극심한 경기침체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과감한 유동성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임영재 연구위원은 "현재는 부실 문제를 `연기'해 둔 상황"이라며 "정부의 희망대로 연말이나 내년 초에 경제가 회복되면 다행이지만, 지금 과 같은 경제 상황이 계속된다면 부실이 현실화하면서 금융기관 손실로 반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경엽 경제연구본부장은 "유동성이 과잉 공급되면 경기침체기에 겪어야 할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장기적으로 경제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중소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모 은행 관계자 는 "대주단 협약에 가입했던 건설사들 중 일부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 신규 자금 지원까지 받았다가 올해 신용위험 평가에서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됐다"며 "재무상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드러난 곳도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양희준 애널리스트는 "유동성 지원 과정에서 경쟁력보다는 `정치력'이 있는 기업들이 지원받게 될 수 있다"며 "차라리 자연적으로 그런 기업들이 걸러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의 최복희 정책총괄실 부장은 "금융기관과 보증기관들도 정부가 하라고 해서 무턱대로 대출을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내수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위해 돈이 원활하게 회전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keun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