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기업 M&A 시장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기업들이 있다. GS와 효성그룹이다. 대우종합기계,대우조선해양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메가 딜'에 적지않게 이름을 올렸지만 한 번도 인수전에서 승리한 적이 없다. 두산 금호 같은 경쟁 그룹들이 잇따라 승전고를 울리는 동안 GS와 효성은 '배짱이 부족하다' '돌다리만 두들기고 건너진 않는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결과는 어떨까. 늘상 변화하는 기업 경영에서 '마지막에 웃는 자'란 있을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GS와 효성의 표정은 밝아 보인다.

조현상 효성 전략본부 전무는 그 비결에 대해 "M&A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 공덕동 효성 본사에서 만난 그는 2004년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서 두산에 밀렸을 때의 느낌을 묻자 "담담했다"고 말했다.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는 얘기다.

"전략적 부합도에도 맞고,우리가 경영할 역량도 되고,주주나 채권자들이 모두 환영했다면 더 높은 가격을 써냈겠지만 그 정도로 꼭 해야 하는 딜은 아니었어요. 인수전에 뛰어들면 마치 주사라도 맞은 것처럼 긍정적인 부분만 보는데,이때 딜을 끌어가는 사람이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서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죠."

그렇다고 효성이 M&A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아홉 건의 딜을 성사시켰고 여기서 창출된 매출만 2조원이 넘는다. 이익률도 10%가 넘는다. 덩치보다는 '이종교배 후 적응력'에 초점을 맞춘 덕분이다.

대우조선 인수전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임원회의에서 "이런 가격으로 들어가면 죽는다"며 전격적으로 포기를 선언한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결단도 당시에는 '너무 보수적이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지만,조선경기가 급락하고 우선 협상대상자였던 한화의 인수마저 실패로 돌아가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포스코와 컨소시엄까지 구성하고 인수전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에서 과감히 발길을 돌렸다는 점에서 오히려 '진짜 용기있는 결단이 아니었느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