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석유화학단지 중심에 자리잡은 국내 최대 나프타분해(NCC)업체 여천NCC 공장.우뚝 솟은 70m 높이의 정제탑이 굉음을 내며 돌아간다. 섭씨 1200도의 열로 나프타를 가열,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을 분리해내는 12개의 분해로는 쉴새없이 열기를 후끈 내뿜는다.

지난 주말 NCC 1공장을 원격 통제하는 주조정실 대화면에는 설비 가동률을 나타내는 지표가 100%를 넘어 104~105%를 넘나들고 있었다. 전 세계적인 수요 감소로 작년 말 한때 3개 NCC공장 중 1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설비 가동률을 70%까지 낮췄던 여천NCC가 지난 1월 중순 이후 석 달 연속 100%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김환 여천NCC 기술기획팀 차장은 "석유제품 기초 원료를 생산하는 여천NCC 공장이 100% 가동하고 있다는 것은 여수 석유화학단지 전체가 완전 가동 상태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석유화학,중국 수요 증가로 '햇살'



LCD(액정표시장치) 패널에 이어 석유화학 업계의 공장 가동률이 100% 수준을 회복했다. 냉장고 에어컨 등 일부 가전제품 라인은 지난달부터 잔업을 재개했다. 수요가 늘고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산업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기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자동차 철강 조선 등 나머지 주력 업종이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데다 석유화학 업종 역시 일시적 가격 반등에 따른 '반짝' 호황이라는 지적도 있어 2분기 이후 산업 경기를 낙관하기만은 어려운 상황이다.

석유화학 업체들의 공장 가동률이 높아진 것은 주요 수출 지역인 중국이 내수 진작에 나서면서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다. 제품 가격도 상승 추세다. 지난 1월 t당 820달러대에 머물던 고무제품 등의 원료인 HDPE(고순도 폴리에틸렌) 가격은 지난 9일 t당 1150달러까지 뛰었다.

작년 12월 가동률이 70%까지 떨어졌던 호남석유화학은 올 들어 주문이 늘어나면서 지난 1월 이후 완전 가동하고 있다. 작년 11월 이후 해외 수요가 뚝 끊기면서 PE(폴리에틸렌) 재고를 공장 곳곳 야적장에 쌓아뒀던 LG화학도 NCC 가동률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시장 전망에 대해서는 업계 내 관측이 엇갈린다. 김영환 LG화학 여수공장 NCC 팀장은 "중동지역에서 건설 중인 석유화학 공장들이 하반기 잇따라 가동에 나설 경우 가격 경쟁력 약화에 따른 업체들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LCD · 반도체,경제위기 이전 수준 회복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선두 LCD 패널 업체들도 올초부터 공장 가동률을 글로벌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시장조사 기관인 디스플레이 서치에 따르면 지난 1월 57달러였던 19인치 모니터용 패널 값은 현재 60달러로 올랐다.

삼성전자는 2분기 안에 유리기판 기준 월 8만장 규모의 8-2 생산라인을 추가 가동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시장 추세라면 국내 업체들이 상반기 영업손실을 하반기에 전부 만회하고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년6개월 이상 불황에 시달렸던 반도체는 휴대폰,MP3플레이어 등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 가격이 뛰면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낸드플래시 가격은 지난해 12월 개당 1.65달러까지 내려앉았다가 올 1월 2.31달러,3월 3.15달러로 오름세를 타고 있다. 내수 판매용 가전제품을 만들고 있는 LG전자 구미공장도 지난달부터 잔업을 재개했다.

◆자동차,가동률 여전히 70% 밑돌아

완성차 업계는 여전히 '봄날'이 멀다고 느끼고 있다. 공장 가동률이 대부분 70%에도 미치지 못한다. GM대우 쌍용차 등 일부 업체의 가동률은 30% 수준에 불과하다.

현대차는 울산1,2공장을 포함해 대다수 공장에서 잔업과 특근을 없앤 생산 체제를 이달 들어서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외 경기 침체 여파가 당초 예상보다 장기화하고 있다"며 "중소형 차종을 만드는 울산 3공장과 지난달 신형 에쿠스를 출시한 5공장만 정상 가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GM대우는 지난 8일부터 인천 부평1,2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라세티 프리미어'를 만드는 전북 군산공장 역시 지난 10일부터 열흘간 예정으로 공장 문을 닫았다.

◆조선 · 철강,2분기에도 고전 이어질 듯

지난 1분기 동안 조강 생산량을 줄여온 포스코 등 국내 철강업체들은 2분기에도 감산을 지속할 전망이다. 세계적 실물경기 침체에 따른 철강시황 악화 탓이다. 연간 조강 생산량이 3300만t에 이르는 포스코는 작년 12월 사상 첫 감산에 들어간 뒤 지난 3월까지 총 110만t 가량 생산량을 줄였다. 2분기에도 매달 30만t 안팎씩 감산할 방침이다. 철강 업계는 2분기 중 바닥을 다지고 3분기부터 시황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수일 동부제철 사장은 "70% 이하였던 공장 가동률이 최근 80% 가까이 올라가고 있어 2분기에는 전 분기보다 실적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한 조선 업계는 수주 가뭄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 2분기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2분기부터 진행될 브라질 호주 등의 고부가 해양설비 발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수=이정호/조재길/장창민/김현예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