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영리 의료법인 도입은 꼭 필요하다. "(기획재정부)

"과잉 기대다. 건강보험당연지정제 등의 전제가 충족되어야만 허용할 수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지난 2월 취임 이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의 핵심인 영리 의료법인(영리법인 병원) 도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주무 부처인 복지부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부,"의료서비스 수지개선에 필수"

영리 의료법인이라는 말은 '영리를 추구하는 의료법인'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지금도 모든 의료기관은 영리를 추구하고 있다.

일반 시중병원은 물론이고 대학병원도 이윤을 남기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영리 의료법인 문제는 엄격히 말해 '의료기관 설립 주체'에 관한 문제다. 현행 의료법 제33조2(의료기관 개설)에 따르면 의료기관을 만들 수 있는 주체는 의사 · 치과의사 · 한의사와 국가 및 지자체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이 주체에 일반 기업과 같은 '영리법인'을 추가하자는 것이 영리 의료법인 논란의 핵심 사안이다.

영리법인이 병원 사업에 뛰어들게 되면 투자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투자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 회수도 가능하다. 다양한 투자 자금이 몰려들어 의료기관을 대형화하고 서비스 질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 영리 의료법인 허용의 핵심 주장이다.

재정부는 여러 병원을 자회사 형태로 거느리며 경영 지원과 투자 업무를 맡는 병원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방안을 5월 중순께 발표할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에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병원지주회사는 여러 개의 병원을 자회사로 두고 홍보,마케팅,공동장비 구매 등 경영지원 업무를 하는 대형 병원경영지원회사(MSO)다. 영리 의료법인이 도입돼야만 가능한 기업 형태다.

재정부는 연간 6000만달러가량의 적자를 내고 있는 의료서비스 수지 개선을 위해서라도 영리 의료법인은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리 의료법인을 만들어 국내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고 외국인 환자를 적극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영리 의료법인 설립으로 의료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중국 일본 등의 고객들이 접근성이 뛰어난 한국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의료 서비스의 질은 높은 반면 진료비는 미국의 4분의 1 수준이어서 외국인 환자 유치에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재정부는 보고 있다.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영리 의료법인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고수익 창출을 위한 인건비 절약으로 고용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기우'라는 주장이다. 영리 의료법인이 도입되면 의료산업 전체가 발전하기 때문에 고용이 늘 수밖에 없다. 의료기기와 제약 산업은 물론 관광 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건강보험당연지정제는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어서 일반인의 진료비는 올라가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서 벗어나는 고가의 서비스를 이용할지 여부는 소비자가 선택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당연지정제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며 "공공보험에서 담당하지 못하는 부분은 민영 의료보험이 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전제조건 충족돼야"

복지부도 영리 의료법인 도입을 작년부터 검토해왔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세가지'라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보험당연지정제 유지다. 당연지정제는 모든 병원이 예외없이 건강보험 가입자를 치료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건강보험 환자를 병원이 거부할 수 없게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영리 의료법인이 허용돼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는 병원이 만들어지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고 그렇지 못한 병원들은 낙후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환자들은 아무래도 영리 의료법인 쪽으로 더 몰리게 되고,영리 의료법인들은 고객들을 골라서 받을 정도로 여유가 생겨 결국 부유층을 타깃으로 하는 병원이 탄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당연지정제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형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영리 의료법인은 성장과 일자리 측면에서만 볼 문제가 아니다"며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의 사례를 봐도 재정부가 '과잉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제동을 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으로 민영보험에 대한 합리적인 규제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리 의료법인이 요구하는 값 비싼 의료비를 모두 보장해주는 고가의 민영보험이 나올 경우 부유층의 전유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서민들은 높은 보험료 부담 때문에 영리 의료법인을 찾지 못하게 돼 당연지정제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이다. 영리 의료법인 허용으로 의료 양극화가 심화되면 공공의료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지금도 환자들이 서울의 대형 병원에 집중돼 지방 보건소 등이 외면받는 경우가 많다"며 "영리 의료법인까지 설립되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 같은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는 방안을 찾기 위해 재정부와 함께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 연구용역을 주는 등 신중한 의견수렴 과정을 좀더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욱진/박신영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