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초 유럽은 대혼란에 빠져 있었다. 도무지 질 줄을 모르는 나폴레옹 때문이었다. 군사력으로 전혀 뒤지지 않던 오스트리아 등이 잇따라 나폴레옹 앞에 무릎을 꿇자 모든 유럽 국가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 잘 날 없던 유럽 근대 전쟁사에 나폴레옹은 확실한 '변종'이었다.

나폴레옹이 정말 두려운 존재라는 점을 각인시킨 것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였다. 과거 프리드리히 대왕(1712~1786)시절 수많은 승전 경험을 쌓았던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의 성공을 그저 운이라 여겼다. 당시 프로이센 군대는 세계 최고의 '전쟁 기계'로 불렸다. 전략의 구사,조직력,군기 모든 면에서 월등했다.

1806년 8월,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6주 후 나폴레옹에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했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행군을 통해 완벽한 위치를 확보함으로써 프로이센 남부를 통과해 전진하는 프랑스 군을 공격한다는 시나리오를 짰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즐겨 구사했던 사선 전투 대형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전쟁을 선포하기도 전인 10월5일 장군들은 당혹스러운 소식을 접했다. 분산돼 있는 줄 알았던 나폴레옹 분대가 서쪽에서 본대와 합류한 뒤 프로이센 남부 깊숙이 집결한 것.나폴레옹 군대는 숨돌릴 여유도 주지 않고 프로이센의 심장부인 베를린을 향해 진격했다. 장군들은 우왕좌왕하다가 퇴각을 결정했다.

퇴각하는 프로이센 군의 후위대를 맡았던 인물은 호엔로에 장군.그는 프랑스 군이 점령한 피어첸하일리겐 마을을 탈환하기로 했다. 군악대 장교가 북으로 구령 박자를 연주하면 병사들은 군기를 휘날리며 완벽한 대열을 갖췄다. 하지만 그들은 탁 트인 평지에 있었다. 반면 나폴레옹 군사들은 벽 뒤와 지붕 위에 있었다. 전투 결과는 대패였다. 퍼레이드에 참가한 자동 인형에 불과했던 프로이센 군은 처참하게 살육당했다.

프로이센 군이 보기에 나폴레옹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날뛰는 철부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기존의 룰'에 지배당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과거의 경험에 집착한 프로이센과는 달랐다. 나폴레옹의 전투 방식은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군사전략의 핵심은 빠른 이동 속도였다. 나폴레옹은 장군들에게 이동 방향과 임무를 제시하고 알아서 임무를 완수하도록 했다. 적군의 눈으로 보면 프랑스 군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나폴레옹 군은 기동력과 전격전의 달인들이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