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의 이라크 유전개발 사업 참여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라크 석유장관이 쿠르드자치정부와 유전개발 계약을 체결한 한국석유공사와 SK에너지에 대해 2일(현지시간) 입찰 배제를 선언한 것.
이라크 중앙정부의 승인 없이 쿠르드자치정부와 계약을 체결한 것이 또다시 화근이 된 것이다.

쿠르드자치정부는 이라크 18개 주 중 3개 주를 관할하며 엄연히 이라크 국가의 테두리 안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분리.독립국가를 세우려는 목표 아래 중앙정부의 견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외국기업들과 독자적인 유전개발 계약을 체결해 왔다.

석유공사와 SK에너지도 지난해 6월 72억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자치주 내 8개 광구에 대한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로서는 한국이 해외유전 개발사업을 통해 확보한 광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석유공사는 한국컨소시엄이 이들 광구에 210억달러를 투자, 한국 전체 2년치 소비량에 해당하는 20억 배럴의 원유를 확보해 3∼4년 후 시험생산에 들어갈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실 한국 정부가 당시 쿠르드자치정부와 계약을 체결할 때 이라크 중앙정부의 반발을 예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라크 중앙정부의 관할 아래 있는 유전들은 이미 세계 메이저 석유 기업들이 선점한 탓에 한국으로서는 쿠르드 지역의 유전 개발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또 이라크 정부와 쿠르드자치정부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석유법 통과 문제가 원만하게 처리될 경우 쿠르드측과 체결한 계약을 중앙정부가 용인할 것이라는 판단도 계약을 강행한 배경 중 하나였다.

이때문에 한국과 이라크 정부는 쿠르드 유전개발 문제를 놓고 최근 몇 년간 다소 불편한 관계로 지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라크 정부는 석유공사를 주축으로 한 한국 컨소시엄이 2007년 11월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와 유전개발 계약을 체결하자 중앙정부를 배제한 채 이뤄진 계약이라며 한국에 원유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라크 정부의 논리는 유전 개발 등 자국 영토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석유 관련 산업은 이라크 중앙정부의 법과 승인 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
이 때문에 이라크 중앙정부는 쿠르드 자치정부와 석유 개발계획은 불법이며 이라크 중앙 정부만이 석유 개발ㆍ수출 계약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주체고 다른 수출은 `밀수'라고 거듭 강조했다.

급기야 이라크 정부는 실제로 한국 컨소시엄에 참여한 SK에너지에 2008년 1월 1일부터 원유 수출을 중단했다.

이라크 원유를 수입하고 싶으면 쿠르드 자치정부와의 계약을 파기하라고 주문했다.

이라크의 원유수출 중단 조치는 한국이 이라크 전쟁 이후 자이툰부대를 파견, 평화정착과 재건을 도운 파병국인 점을 감안했을 때 매우 단호한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한국 컨소시엄은 오히려 같은해 2월 14일 서울에서 바르자니 쿠르드 정부 총리와 쿠르드 지역 4개 광구를 추가 개발키로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맞받아쳤다.

당시 정부의 한 당국자는 "우리로서는 당장의 원유 공급도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미래의 안정적이고 규모가 큰 유전 확보를 고려할 때 쿠르드지역을 쉽게 놓을 수 없다"며 양해각서 체결 배경을 전했다.

지난해 6월에는 이번에 문제가 된 쿠르드 지역 내 8개 광구 개발 및 지분 참여계약을 체결, 한국과 이라크 정부간 불편한 관계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국과 이라크 정부의 쿠르드 유전 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지난해 말 SK에너지가 쿠르드 바지안 광구 개발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라크 정부는 지난 1월 원유수출 금지 조치를 1년만에 해제했고 2월에는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이 방한, 경제협력 강화를 다짐하면서 유전개발 사업 참여에도 청신호가 켜지는 분위기였다.

특히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35억5000만달러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해 주는 대가로 이라크 바스라 유전 개발을 통해 상응하는 석유를 도입키로 한 양해각서가 체결됐을 땐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이라크 중앙정부의 원만한 협조를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이라크 석유장관의 갑작스런 이번 발언으로 이라크 유전개발 사업은 다시 한번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달 발표 예정인 이라크의 `2차 국제 사전 자격심사(PQ)'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우려된다.

SK에너지는 이라크 남부 유전의 입찰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2차 사전 자격심사(PQ)에 참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원 확보를 위해 한국 정부가 이라크 중앙정부와 쿠르드자치정부 사이에서 어떤 절묘한 대책을 강구할지 주목된다.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iny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