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은행에는 당근, 車산업엔 채찍…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30일 제너럴 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제출한 구조조정안에 대해 퇴짜를 놓고 시한부로 자구안을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제대로 된 자구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파산도 불사하겠다는 최후통첩도 함께 전달했다.
이들 두 회사가 정부에 요청한 추가 구제금융 액수는 200억달러가 약간 넘는 수준이다.
보험회사인 AIG 한곳에만 1천8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쏟아붓고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대해서도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본투입을 단행했던 미 정부가 자동차산업에 대해 이렇게 싸늘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회사들이 거액의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전용기 구입에 나서는가 하면 임원들이 호화리조트에서 흥청망청 돈을 써도 그동안 정부가 거의 수수방관해온 점에 비춰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승리에 일익을 담당해온 자동차산업에 이처럼 가혹한 처방을 내린 것은 원칙을 잃은 처사로 여길만 하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전문지인 폴리티코는 30일 은행은 당근을 챙기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자동차산업은 또한 채찍을 맞아야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서 오바마의 이번 조치가 나오게 된 배경을 5가지 요인으로 분석했다.
첫째는 자동차산업이 생존을 위한 실질적인 자구안을 마련할 기회를 가졌지만 이들이 내놓은 것은 백악관이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은행산업에는 무엇이 잘못됐고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으며 은행산업의 리더십을 꽤 신뢰하는 편이지만, 자동차산업의 경우 생존을 위한 계획과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둘째로는, 투입된 공적자금의 회수 가능성 때문에 자동차산업이 상대적으로 홀대받게 됐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은행은 임직원의 급여와 보너스 등에 관한 규제를 받지 않기 위해 공적자금을 조기에 상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며, 정부도 공적자금을 제공하는 대가로 은행의 우선주를 확보한 상태여서 혈세의 상당부분을 회수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자동차업체들에 제공된 공적자금은 채무변제의 우선권이 확보돼 있지 않기 때문에 파산절차에 들어가면 회수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추가지원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훨씬 더 혹독한 기준을 설정했으며 이를 대국민 홍보용 `전리품'으로 활용하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유로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이론이 자동차산업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AIG와 초대형은행들이 파산할 경우 미국 경제가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지만 자동차산업의 파산은 그렇게 심각한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백악관에 자리잡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크라이슬러는 파산하더라도 충격파가 미미할 것으로 보이며, GM은 다소간 후유증이 있겠지만 미국 경제 전반을 뒤흔들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또 이들 회사의 파산 가능성은 이미 금융시장에 어느 정도 충분히 반영된 악재여서 막상 현실화됐을 때 충격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넷째, 미국의 자동차산업이 양질의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GM은 2004년 이후 누적 손실이 820억달러에 달하지만 자동차 시장의 미래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있다면서 시장흐름에 역행하는 마케팅에 치중,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 사이에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연료효율이 높은 하이브리드차량 개발에 역점을 둬 시장을 선도해왔다.
백악관의 고위관계자는 크라이슬러의 경우 컨슈머리포트가 선정하는 우수차량 리스트에 단 모델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차량 구매행위를 통해 이미 미국 자동차산업에 대해 냉정하게 `X'표를 던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마지막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그동안 AIG의 보너스 파문과 구제금융의 효과 등을 둘러싼 불리한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자동차산업을 제물로 삼아 단호한 태도를 취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납세자들이 구제금융 자금으로 자신들의 혈세가 허비되는 것에 보고 반기를 들고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자동차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가차없이 쫓아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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