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대기업에 대한 투자재원 마련과 신속한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대기업들도 산은에 잇따라 구조를 요청하고 있다.

산은이 26일 현대차 SK 두산의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1조원 규모의 채권담보부증권(CBO)을 발행하겠다는 것은 이들 기업이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대기업들이 비상 상황에 대비해 최대한 유동성을 비축하면서 투자에 나서지 않는 상황을 감안해 산은이 미리 이들 기업에 대한 대출여력을 넓혀놓겠다는 것이다.

현행 은행법상 금융회사는 개별 기업에 대해 자기자본의 20%,그룹 단위로는 자기자본의 25%까지만 신용공여를 할 수 있다. 이들 3개 그룹의 경우 이미 신용공여 한도가 차버려 더 이상 지원을 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보유하고 있던 유가증권을 털어내 추가적인 자금 지원에 나설 수 있도록 CBO를 발행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산은 관계자는 "CBO 발행과 이들 대기업에 대한 향후 자금지원 계획과 직접 상관관계는 없다"면서도 "이들 기업이 향후 구체적인 투자의향이 있다는 점을 우선 고려했다"고 말했다.

산은은 이와 함께 유동성 부족에 처한 대기업들이 잇따라 자산 인수 등 지원 요청을 해옴에 따라 이에 대한 검토작업도 진행 중이다. 동부하이텍은 최근 산업은행에 자회사인 동부메탈 지분 40~50% 매입을 제안했으며 대우자판도 자구계획 차원에서 매각이 추진 중인 자산 중 일부를 산은 측에서 인수할 수 있는지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부하이텍은 동부메탈의 지분 매각을 통해 5000억원 안팎의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방안이다. 산은은 반도체 시황이 개선되면서 동부하이텍의 현금흐름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조선업계도 산은에 자기자본의 20%인 신용공여 한도 기준을 수출입은행 수준인 40%로 높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GM대우도 1조원의 자금 요청을 한 상태다. 게다가 산은은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실물경제 지원과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은행자본확충펀드에도 2조원을 지원한 상태다. 금융권과 재계에서는 현재의 금융위기 상황을 감안할 때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대기업의 경우 자산 매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산은이 이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의 소방수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은은 일단 주거래 관계에 있는 대기업에 대한 신용위험도 평가 결과가 나오는 내달 말 이후 개별 사안별로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당장 유동성 악화로 인한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거나 부도위험에 처한 대기업들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전체적인 자금 수요와 우선순위를 파악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