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과는 손발이 안 맞아 같이 일 못해 먹겠습니다. "

23일 만난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에 대해 목청부터 높였다. 은행 자본확충펀드에 10조원을 투입키로 한 이후 한은이 자체적으로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 중인데 금감원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더니 거절당했다는 설명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경기가 악화되는 상황을 가정해 은행이 얼마나 손실을 더 볼지 가늠해 보는 건전성 모의 실험이다.

그의 목소리는 다음 대목에서 아예 분통으로 바뀌었다. "그뿐이 아닙니다. 금감원이 은행에다 전화를 해서 한은에는 관련 자료를 주지 못하도록 조치를 내렸다는 것 아닙니까. "

금감원의 얘기는 180도 달랐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원래 시행 주체가 나름대로의 가정을 넣어서 분석하는 결과이기 때문에 공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1차 데이터라면 몰라도 가공한 자료를 달라고 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며,한은 측에 자료를 제공하지 말라고 했다는 주장은 사실 왜곡이라고 밝혔다. 한 간부는 "금감원도 필요해서 한은에 환율 전망의 기초 자료를 달라고 하면 한은은 아예 듣는 척도 안 한다"고 항변했다.

은행을 감독하는 금감원과 한은은 사실 한뿌리다.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의 설치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기 전까지 금감원의 전신인 은행감독원은 소공동에 한은과 같이 있었다. 하지만 갈라진 지 11년이 지나자 남남 사이를 지나 견원지간이 돼 버렸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가 된 데는 금융당국의 균열도 한몫 했다는 진단이 많다. CDS(신용부도 스와프) CDO(부채담보부 증권) 등 파생 상품에 대한 감독의 범위와 책임 등에서 틈이 벌어지자 부실이 독버섯처럼 피어 올랐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그러나 이제 금융당국 간 공조체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9개 대형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만 하더라도 재무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통화감독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연방저축기관감독청 등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한은과 금감원이 이처럼 계속해서 따로 놀면 한국에서 금융 위기가 진정되길 기대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 미 금융당국의 시행착오를 지금이라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