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기획 상품이 뜻밖에도 번번이 실패하면 기업은 낭패한다. 해당 기업가는 결국 파산하므로 근로자 임금도 체불할 수밖에 없다. 제품을 잘못 개발한 기업가의 파산은 그렇다 치더라도 열심히 일한 것 외에 아무 죄도 없는 수많은 근로자까지도 고생한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는데도 보상은커녕 세상은 이들에게 오히려 크나큰 시련을 준다.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여름 동안 부지런히 일한 개미는 북풍한설 겨울 속에서도 따뜻한 집에서 먹을 것이 풍족하지만 개미를 비웃으며 놀기만 하던 베짱이는 개미에게 밥을 비는 신세로 전락한다. 게으르면 베짱이 꼴이 되고 부지런히 일하면 개미처럼 부를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근로는 이솝이 살던 고대 그리스의 근로와는 특성이 다르다. '이솝'의 개미가 한 일은 스스로 먹을 음식과 태울 땔감을 모으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을 많이 할수록 음식과 땔감은 많이 모이고 개미는 부자가 된다.

현대인은 이솝의 개미와는 달리 내가 쓸 물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사용할 상품을 생산하는 일을 한다. 현대사회는 자급자족하던 '이솝'의 그리스와는 달리 분업사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일하여 만든 물건이 시장에서 팔려야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했더라도 시장이 내 생산물을 외면하면 나는 조금의 소득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솝의 시대에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풍요로운 생활이 보장됐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상품을 시장이 외면해버리면 생산회사의 기업가와 근로자들이 투입한 노력은 모두 헛일이 된다. 이들의 땀이 헛고생으로 되고 만 것은 일감 선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스스로 제일 잘 아는 만큼 개미가 일감 선택에 실패할 일은 없다. 그러나 남들이 쓸 상품을 생산하는 현대의 근로는 일감 선택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일감 선택은 기업가의 몫이다. 기업가가 잘못 판단하면 그가 고용한 수많은 근로자들의 구슬땀이 모두 헛고생으로 끝난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현대 경제의 근로는 기업가의 지도(directing) 노동이 근로자의 피지도(directed) 노동을 이끄는 형태로 전개된다고 설명하고 지도 노동이 가치창출의 핵심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기업가는 가치생산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고 보고 기업이윤의 본질이 노동착취라는 결론에 이른다. 산업혁명 직후의 마르크스는 지도 노동의 실패를 관찰할 기회가 적었고 따라서 20세기의 슘페터보다는 현대 분업사회의 근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을 보면 하나같이 모두 선진국 기업들이다. 개도국이 못사는 것은 사람들이 베짱이처럼 게을러서가 아니다. 이들의 노동을 잘 팔리는 상품의 생산으로 이끄는 좋은 기업들이 없어서 안정된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