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팀 = 글로벌 경기침체로 긴축경영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초단기 시나리오에 따른 단기 경영 체제로 들어간 상태여서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업들은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과 신용경색이 풀리기 전까지는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수요 회복 이전에 기업 투자를 유도하려면 정부가 과감한 재정지원과 금융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손님도 없는데 쌀만 사놓을 수 있나'
삼성그룹 등 대기업들은 단기 시나리오에 따른 비상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한 변동성이 확대돼 경영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불확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현재 단기적인 시나리오 경영을 하고 있다"며 "투자를 한다면 어느 정도 경기가 회복되고 매출 목표가 나와야 하는데 상당히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연간 투자 계획 자체를 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SK그룹도 시나리오 플래닝 경영방침에 따라 3개월 단위로 경영계획을 짜서 집행하고 있고, 금호와 한화그룹 역시 올해 투자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통신이나 에너지 사업 모두 수급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섣불리 투자할 수 없다"며 "중국의 수요가 어느정도 나올지 등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무엇보다 대규모 설비투자에 나설 수 없는 이유로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을 꼽았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무리해서 설비투자를 잔뜩 했다가 운영자금이 부족해져 문을 닫게 되면 누가 책임을 지겠냐"면서 "매출이 줄어들면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는데다 경기 회복 여부도 불투명한 만큼 현금을 쌓아두고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또 신용경색으로 자금 조달 창구가 얼어붙어 돈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투자에 나설 수 없는 이유로 제시했다.

더구나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상장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71조 원에 이르지만 이 중 51조 원은 1년 내에 갚아야 할 단기자금이라는 것이다.

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도 여의치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월 중 유상증자를 통한 주식발행금액은 3천912억 원으로 전달보다 34.4% 감소했다.

또 기업들의 일회사채 발행액은 4조8천602억 원으로 전달보다 12.8% 줄어들었다.

신용등급별로 A등급 이상 회사채는 4조4천907억 원 가량 발행된 반면 BB등급 이하 회사채는 2천억 원 발행되는 데 그쳤다.

전경련 관계자는 "상위 7~8개 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며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은 데다, 은행들도 대출을 꺼려 돈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 "자금흐름 풀어줘야"
기업들은 수요가 살아나기 이전에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 위해선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을 보강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예컨대 기업들의 자금흐름이 원활해지도록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안정을 유도해 자금조달 물꼬를 터주거나 공공투자 확대를 위해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려주는 방법이 가능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1천여 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9년 설비투자계획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투자활성화를 위한 과제로 금융지원 확대(39.0%)를 최우선으로 꼽았고 금융시장 안정(16.8%), 세제지원 확대(14.0%), 재정지출 확대(10.6%) 등도 제시했다.

기업들은 이를 위해 정부 주도로 국책은행이나 정부 소유 은행 또는 각종 기금 등의 기관들이 적극 나서 기업들의 자금줄을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뿐 아니라 신규 대출과 신규 회사채 발행, 수출입금융 활성화 등을 위한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며 "회사채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채권시장안정펀드 규모를 더 키우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글로벌 경기 영향권에 있는 수출을 늘려 인위적으로 설비 투자를 유도하기는 힘들다며 우선 소비 진작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는 한편 금리 및 환율시장 안정과 세제혜택 부여 등의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권 굿모닝신한증권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금리와 환율 등을 안정적인 수준에서 유지해 기업들이 경영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창배 박사는 "기업들이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며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책은 세제 혜택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고유선 대우증권 연구원은 "단순한 세금 감면과 같은 조치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녹색산업 등 신성장산업을 제시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