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보험사인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이 정부에서 받은 구제금융 자금으로 보너스와 빚 잔치를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대부분의 의원들도 AIG의 행태와 정부의 감독 소홀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어 오바마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 정책에도 적지 않은 차질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16일 백악관에서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AIG의 보너스 지급 결정은 무모하고 탐욕스러운 행동"이라며 "파생상품 트레이더들에게 1억6500만달러의 보너스를 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주주로서 정부가 법적 수단을 강구해 보너스 지급을 막을 방법을 찾아보도록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AIG 보너스는 탐욕스러운 행동"
특히 "이번 사안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가치의 문제"라며 AIG의 후안무치한 보너스 잔치를 비판했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지급 대상자들이 자발적으로 보너스를 포기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AIG에 지금까지 1525억달러를 지원하면서 우선주 79.9%를 확보하고 있다.

이와 관련,재무부는 AIG를 압박하기 위해 300억달러 규모의 추가 구제금융 제공 계획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AIG에 대한 분노가 고조되는 것은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에 맺은 계약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회사 측이 보너스 지급을 강행한 탓이다. AIG는 최근 지급한 1억6500만달러를 포함,2년에 걸쳐 총 4억5000만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할 계획이다.

또 AIG 구제금융의 혜택을 주로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 월가 금융사와 소시에테제네랄,도이체방크 등 대형 외국 은행이 누렸다는 점도 의원들과 국민들을 화나게 만든 요인이다. 하원 의원들은 그동안 두 차례 청문회를 열면서 AIG로 하여금 돈이 흘러간 금융사를 밝히지 않으면 추가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압박했다. AIG는 의회 압력에 굴복해 수혜 금융사와 흘러간 돈의 규모를 밝혔지만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미국민들이 월가 금융사 구제금융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자 이를 의식한 의원들이 앞다퉈 강한 톤으로 AIG의 행태와 오바마 정부의 감독 소홀 등을 지적하고 있다.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장은 폭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부가 법적으로 AIG에 지급한 보너스를 회수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AIG에 대한 분노가 자칫 추가 구제금융을 위한 오바마 정부의 의회 설득을 어렵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바마 정부는 7500억달러의 추가 구제금융을 의회에 요청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처리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상황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한 무책임성에 대한 분노가 들끓고 있어 대처하기 힘들게 됐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의회가 구제금융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해 월가 금융사에 대한 추가 지원을 거부하면 금융위기 극복을 지연시켜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는 점에서 부실 금융사에 대한 구제금융은 오바마 정부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구제금융 금융사의 보너스 지급에 대한 국민 여론이 비등하자 씨티그룹 모건스탠리 등은 정부의 보너스 규제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위 임원의 기본급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날 보도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