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투자 확대를 위해서는 대기업들에도 단기 차입금 만기를 연장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3월 정례 회장단회의를 갖고 "중소기업에 국한해 시행할 예정인 회사채 만기 연장 범위를 대기업으로 확대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재계 총수들은 내수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계획된 투자는 가급적 상반기 중 집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올해 예정된 600대 기업의 총 투자 규모는 지난해보다 2조원가량 줄어든 87조원이다.

신입사원과 인턴채용 규모도 당초 계획보다 늘리기로 했다. 전경련은 대졸 초임 삭감 등을 통해 늘어난 30대 그룹의 올해 채용 규모는 내달께 발표할 예정이다.

◆"대기업 회사채 만기도 연장해 달라"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회의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업들이 71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투자와 고용에 쓰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단기 채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들은 51조원에 달하는 단기 회사채 상환 시기를 연장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려워 현금이 있어도 풀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정부가 보증을 선 중소기업대출은 조건 없이 1년간 만기를 연장하고 은행권에도 대출 만기 연장을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올해 600대 기업의 투자 규모가 줄어든 것과 관련,"해외 기업들은 투자는커녕 사람을 자르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와 엇비슷한 87조원 투자는 잘한 것"이라며 "높게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권력 짓밟히는 나라에 누가 투자하겠나"

회장단은 GE,AIG,씨티은행 등의 주가가 폭락하고 GM,IBM,마이크로소프트,도요타,소니 등이 대규모 감원에 나서는 등 전 세계적으로 기업 경영환경이 최악의 국면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했다.

회장단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정부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국회에는 이번에 처리되지 못한 금산분리,지주회사,한 · 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 등의 주요 경제 안건들을 이른 시일 내에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정부에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채권안정펀드 규모를 확충하고 국책은행의 자본을 늘리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회장단의 공통된 생각이다.

공권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지금처럼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고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 지속되면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할 수 없을 뿐더러 국내 기업들의 투자 심리도 악화된다는 얘기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법적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날 회의에는 정몽구 현대 · 기아자동차 회장,최태원 SK 회장,정준양 포스코 회장,김승연 한화 회장,박용현 두산 회장,조양호 한진 회장,강덕수 STX 회장 등 13명이 참여했다. 최근 포스코의 수장이 된 정준양 회장과 지난달 총회에서 부회장단에 합류한 강덕수 회장이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몽구 회장은 이날부터 판매에 들어간 검은색 신형 에쿠스를 타고 회의장에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송형석/김태훈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