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LCD(액정표시장치) TV 등 디지털 가전제품 가격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판매 부진에 고전하고 있는 업체들 사이에 가격 인하 경쟁이 불붙었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1일 일본 내 2000개 이상의 가전양판점 판매가격을 조사하는 GfK재팬과 BCN 자료를 인용,LCD TV 32인치 제품의 2월 평균 판매가격은 1년 전에 비해 16%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 △디지털카메라 11% △컴퓨터 21% △MP3 플레이어 15%씩 가격이 하락했다. DVD리코더의 대체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고화질 BD(블루레이디스크)리코더 가격도 28% 내려 9만7000엔(약 145만원)까지 떨어졌다.

일본 LCD TV 등 디지털 가전 '가격 파괴'
특히 금융위기가 심화된 작년 가을 이후 가격 하락 폭이 컸다. 32인치형 LCD TV는 연말 세일로 10만엔대 벽이 무너져 2월 평균 가격이 9만4000엔대(140만원)였다. PC도 10만엔(150만원) 선이 조만간 깨질 조짐이다.

디지털 가전제품 가격이 속락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판매 부진에 있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LCD TV의 일본 내 출하 대수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하지만 작년 10월부터 둔화되기 시작해 11~12월에는 한 자릿수 증가율에 그쳤다. 가전업체들이 작년 말 대대적인 가격 인하 세일을 벌인 배경이다.

제품 특성의 변화도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예컨대 PC의 경우 기능을 축소해 필수 기능만을 갖춘 5만엔(약 75만원)대 제품이 인기다. 휴대용 오디오기기도 미국 애플의 신제품 효과가 사라지는 등 디지털 가전제품 가격 하락은 전 품목으로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가전 가격은 떨어지고 있는 반면 전자 부품 가격은 오르고 있다. 음악플레이어 등에 사용되는 낸드형 플래시메모리 가격은 10개월 만에 최근 반등해 2월 도매가격이 개당 3달러에 달했다. 전달에 비해 20% 높은 것이다. PC용 D램도 2월 출하가격이 거의 반 년 만에 상승해 0.74달러를 기록했다.

그동안 가격이 계속 떨어지던 LCD 패널은 연초 하락세가 멈췄다. 전자 부품 가격이 뛰는 것은 작년 가을부터 시작된 감산 때문이다. 가전회사들의 가격 인하 경쟁으로 제품 출하가 일시적으로 증가해 부품 재고의 조정도 이뤄졌다.

디지털 가전제품 가격 하락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불황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싼 제품만을 찾아 가전회사들은 가격 인하 경쟁을 멈출 수 없는 형편이다. 가격 인하 경쟁으로 가전회사들의 출혈도 나타나고 있다. 가전업체들은 가격 인하에 따른 손실을 비용 감축으로 메우고 있다. 파나소닉 등 주요 업체들은 올해 직원들의 임금을 4년 만에 동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격 하락이 비용 삭감 속도를 웃돌아 소니 등 대기업은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줄줄이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에게 제품 가격 하락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업체들은 고통받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