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란 막으려면 우리 지원해야"

이달 초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추가로 거액을 지원받은 보험사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이 자신들을 망하게 놔두면 대혼란이 불가피하다며 정부의 긴급 지원을 압박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 통신은 9일 AIG가 지난 2일 정부로부터 추가로 300억달러를 지원받아 기존의 1천500억달러 지원에 이어 4번째 구제조치를 받기에 앞서 제출한 자료를 입수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월26일자로 돼있는 21쪽 분량의 이 자료는 '엄격한 기밀'이라는 표시가 붙어있었고 미 연방 및 주의 감독당국 관계자들에게 회람됐다.

AIG는 자료에서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붕괴 때보다 시장을 더 악화시킬 AIG의 재앙적인 몰락을 막기 위해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재무부로부터 긴급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당국을 압박했다.

AIG는 자신들의 몰락은 단기자금시장인 머니마켓펀드(MMF)를 무력화시키고, 유럽 은행들의 자금난을 불러오는 것은 물론 다른 보험사들의 몰락을 재촉해 AIG에 투입된 납세자들의 돈이 날아가버릴 것이라는 점 등을 긴급 지원이 필요한 이유들로 열거했다.

AIG는 또 보험사는 자유 기업 시스템의 산소와도 같은 것이라면서 자신들의 곤경을 막겠다는 약속이 없으면 자본주의의 근간이 훼손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즉 자신들의 몰락이 기존의 금융위기 보다 금융시장에 더 큰 타격을 불러올 것이라며 '대마불사'의 이유를 설명한 셈이다.

AIG는 정부가 자신들을 망하게 놔두면 전 세계적인 혼란이 올 것을 경고하면서 미국 달러 가치의 추락, 미 국채 이자 상승 등 AIG의 몰락이 불러올 충격을 경제가 견뎌낼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AIG가 자료에서 제시한 내용들을 보면 AIG의 몰락이 얼마나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우선 AIG는 신용부도스왑(CDO) 상품을 매입한 유럽 은행들은 100억달러의 자금을 추가로 조달할 필요가 있게 되고 신용등급 강등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AIG가 자신들의 몰락시 추가 자금조달이 필요한 유럽 은행으로 제시한 곳은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 소시에테 제네랄, BNP 파리바스 등 여러 곳이다.

AIG는 또한 미국의 보험 가입자들이 19조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회수하려 할 것이고 해외 140개국에서 영업을 하는 AIG의 몰락은 이들 지역의 전체 보험산업에도 손상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MMF에 380억달러를 제공한 AIG의 붕괴는 MMF에 손실을 가져와 고객들이 피해를 보게 되고 미 지방자치단체의 채권 시장에도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AIG는 주장했다.

AIG는 이와 함께 자신들의 몰락은 세계 항공기 리스 분야에서 최대인 자회사 인터내셔널 리스 파이낸스가 체결한 125억달러 규모의 항공기 주문에도 타격을 줘 보잉사 등의 감원으로 이어질 수 있고 AIG 자체적으로도 11만6천명에 달하는 직원들의 일자리 상실이라는 문제도 불러올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AIG는 지난 2일 작년 4.4분기에 617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내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고 미 정부는 결국 AIG에 대한 4번째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AIG의 주장대로 AIG는 그냥 망하게 놔두기에는 그 충격이 너무 크다는 것에 미 정부도 동의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AIG가 불러올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미 정부의 AIG 지원에 대한 입장이 바뀌어 온 것에서도 확인된다.

미 정부는 당초 작년 9월 AIG의 지원에 나설 당시만 해도 대출의 대가로 3개월 리보(런던은행간 대출금리)+3.0% 조건을 적용한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등 지원에 따른 대가를 요구하는 대출자로서 행동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사이 정부는 잇단 추가 지원 속에 이번에는 리보금리 하한을 없애 AIG의 이자 부담을 연간 10억달러 가량 줄여주는 등 AIG를 일단 가치를 보전하면서 살리려는 쪽으로 선회했다.

당초 이만큼 심각해질 것이라고 보지 않았으나 상황이 더 악화되면서 정부가 이제는 발을 빼지 못하게 된 것이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