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일 "연내 경기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며 "침대 밑에 돈을 넣어두지 말고 소비해줄 것"을 촉구했다. 금융시장 불안이 진정되지 않고,실업 증가로 미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자 소비시장을 살려 경기 회복 시기를 앞당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앞으로 더욱 어려운 시기가 남아 있다"며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국 정부는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모두 취하고 있으며,이를 통해 미국을 부강한 나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1월20일 대통령에 취임한 후 △경기부양 △금융시장 안정화 △주택압류 방지 △소비자금융 활성화 등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강조한 뒤 국민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줄 것을 주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날 공군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서 가진 회견에서도 "미래를 볼 수 있는 '수정구슬(crystal ball)'을 가진 사람은 없다"며 "미국 경제가 올 연말께 회복될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확신을 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최근 발표된 2010년 연방 예산안에서 올 하반기부터 미국 경제가 다시 성장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에 비해 경기 예측이 악화된 것이다. 그는 이어 "미 경제는 반드시 전환점을 찾게 되겠지만 시점이 문제다"며 "실제로 경기가 살아나려면 고용이 늘어나는 등 경제지표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민들이 소비를 늘려줘야 경제 회복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금융시장의 안정과 경제 회복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딜론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고속도로인터체인지 준공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중앙은행이 경기 회복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펼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과 버냉키 의장이 한목소리로 경제위기 극복 의지를 피력한 것은 주가 폭락과 실업자 증가 등으로 좌절에 빠진 미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되찾게 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이에 앞서 미국의 2월 실업률이 8.1%에 달해 1983년 12월 이후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미 노동부가 발표했다. 실업자는 지난달 65만1000명이 증가해 경기침체가 시작된 2007년 12월 이후 14개월 연속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이 기간 중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440만명에 달했다. 특히 지난 6개월 동안 실업자가 된 사람은 330만명으로,6개월 기준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감소폭이 가장 컸다. CNN은 2월 중 파트타임 근로자,구직을 포기한 사람 등을 포함한 불완전고용률이 16.7%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경기를 어둡게 보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이날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내년에도 이어지고, 일자리가 2011년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다른 나라들은 감기에 걸린다고 말하는데,미국은 단순히 재채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만성 폐렴을 앓고 있다"고 우려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