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를 주름잡던 글로벌 간판주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다우지수가 12년 만에 6600선 아래로 추락한 가운데 씨티그룹 AIG GM 포드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담배 한 갑보다 싼 1달러대 이하로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이 때문에 AIG 같은 기업의 시가총액은 삼성증권의 절반도 안되며 GM은 현대차 시총의 7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세계 최대 은행을 자부하던 씨티그룹은 5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치욕의 하루를 보냈다.

장중 주가가 사상 처음으로 1달러도 안되는 93센트까지 떨어져 이른바 '페니(동전) 주식'으로 전락했다.

은행 국유화로 기존 주주들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비관론이 퍼지면서 투매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씨티 주가는 마감을 앞두고 그나마 소폭 회복해 1달러 2센트로 마감했지만 1달러 밑으로 추락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평가가 많다.

미 최대 보험사인 AIG의 체면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말 1달러대를 간신히 지켰던 AIG는 이날 35센트로 장을 마쳤다.

자동차주도 딱한 처지다. 파산보호 신청 가능성이 제기된 GM은 1달러 86센트,포드는 1달러 81센트로 모두 1달러대에서 거래됐다.

심지어 포드는 최근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신용등급을 'CCC+'에서 'CC'로 강등당하면서 골프장을 뜻하는 컨트리클럽(CC)에 빗대 '포드 골프장'이란 조롱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주가가 폭락한 이번 기회에 미국 대표 기업들을 헐값에 인수해도 되겠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실제 미국 주요 기업들의 경우 다우지수가 고점을 찍었던 2007년 10월9일에 비하면 시가총액의 97~98%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씨티그룹은 2007년 고점 당시 시총이 366조원을 넘어 지금 주가가 50만3000원인 삼성전자를 다섯 번이나 살 수 있었던 '공룡주'였지만 1년5개월 만에 7조856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는 KB금융(9조5850억원)이나 신한지주(8조1220억원)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AIG 역시 이 기간 동안 시총이 285조원에서 1조4000억원대로 추락해 삼성증권(3조274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자동차의 아버지'인 포드와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GM 역시 현대차 시총의 각각 절반과 7분의 1에 불과하다.

이처럼 월가 간판주들이 '페니 주식'으로 전락하자 온라인 야간거래를 통해 단타를 모색하는 국내 개인투자자들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리딩투자증권 굿모닝신한증권 등 온라인으로 미국 주식 매매를 대행해주는 증권사에는 최근 개인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

김석진 리딩투자증권 국제팀 과장은 "저가 주식을 좋아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최근에는 뉴욕 증시의 값싼 주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작년 말 AIG 등 금융주 위주였던 것이 최근에는 GM 등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단타에 나서는 투자자도 많다"고 말했다. 유진관 굿모닝신한증권 과장은 "심야에 미국 주식 거래를 위해 걸려오는 전화가 하루에만 500~600통에 이른다"고 전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