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상승보다 침체가 더 무서워

"반값 할인도 좋다.빈자리를 채워 살아남아야 한다."

지난해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서부텍사스산 원유 기준)를 웃돌았을 때도 가격할인에 나서지 않던 항공사들이 최근 티켓 가격을 대폭 할인하면서 세일에 나섰다.

유가는 당시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지만 극심한 경기침체로 소비지출이 급감하면서 여행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미국 항공사들이 티켓 가격을 최고 가격 대비 절반 수준까지 깎아주면서 운항 항공기의 빈자리라도 채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여행예약업체인 '트래블로씨티'에 따르면 최근 가장 인기있는 100개 국내·국제선의 평균 항공요금은 작년 6월보다 무려 40%나 급락하면서 24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나이티드항공과 아메리칸항공은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 뉴욕, 또는 워싱턴간 왕복요금을 1년전 350∼400달러에서 지금은 250달러 수준으로 인하했다.

1년전 600∼700달러였던 컨티넨털항공의 뉴욕과 암스테르담이나 마드리드, 프랑크푸르트간 왕복요금은 40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시카고와 시드니간 요금은 1년전 2천달러를 넘었으나 지금은 절반인 1천달러에도 못 미친다.

항공사들은 작년 유가가 급등해 어려움을 겪을 때도 가격 인하 대신 각종 경비절감과 효율성 제고 등을 통해 어려움을 견뎌왔고,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서자 고비는 넘긴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가 하락과 함께 전세계를 강타한 경기침체는 소비 심리를 얼어붙게 만들어 항공업계에 유가 상승보다 더 무서운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항공사들의 이런 가격 인하 경쟁이 확산되고 있지만, 요금인하가 업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일반 소비자들의 여행 감소는 물론 기업들도 경비절감 차원에서 출장을 줄이거나 출장비를 삭감하는 등 지출 축소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라스베이거스 맥카렌 국제공항은 지난 1월 여객수가 1년 전보다 15.7%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트렌드 분석업체인 D.K. 쉬플릿&어소시에이츠의 더그 쉬플릿 사장은 "많은 사람이 비행기보다는 자동차를 이용해 짧은 거리만 여행하는 식으로 여행을 줄이고 있다.

"라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