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사가 구조조정의 수술대에 올랐다. 건설 · 조선사처럼 신용위험을 평가해 옥석을 가릴 계획이다. 하지만 살생부를 작성한다는 것 보다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시장 동요 차단위한 지원

금융위원회의 5일 발표는 부실 해운사의 퇴출보다는 산업정책적 측면을 고려한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해운업이 수출입과 직접 연관돼 있고,국가의 대외신인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시장의 동요를 막겠다는 게 이날 발표의 목적이다.

정부가 산하기관을 통해 유동성 부족에 빠진 해운사의 선박을 직접 매입하고 선박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우선 해운업체가 보유한 선박이 해외로 헐값 매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선박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 계류 중인 선박투자회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선박펀드를 만들어 매물로 나오는 선박을 국내 금융기관이 산 뒤 해운사에 용선해 주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개정안은 해운업체가 채무상환을 위해 매각하는 선박에 총자산의 70%를 투자하는 선박투자회사에 기간 제한 없이 현물출자나 주식 추가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펀드에는 자산관리공사나 산업은행 등이 투자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불경기에 우리 배를 헐값에 외국에 넘기면 경기가 회복돼 물동량이 급증할 경우 자칫 선박을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일단 배를 팔아 금융기관에 진 빚도 못 갚는 '깡통배'를 구제하면서 시간을 벌겠다는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선박투자회사에는 은행법과 보험업법에 따른 금융기관의 다른 회사 주식보유 비율 제한 규정과 연결재무제표 작성 의무도 면제해 주기로 했다. 권혁세 금융위 사무처장은 "용선 계약 및 선박거래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 다음 달 초까지 해운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별도로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형사 2~3곳 강제 구조조정 가능성

해운사에 대한 정부 지원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부실 정도가 심한 중소 해운사에 대한 강제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일단 주채권은행을 통해 6월까지 177개 해운사에 대한 신용위험도를 평가,옥석을 가리기로 했다.

금융권에서는 37개 대형 해운사 중 C 또는 D등급을 받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자금지원중단(퇴출) 등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업체는 2~3곳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140개 중소 해운사 중 이미 사실상 부도상태인 10~20개사도 퇴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은행권 관계자는 "해운사의 경우 채권,채무관계가 서로 얽혀있어 상위권 업체에 C 이하 등급을 주기는 어렵다"며 "조선과 건설사처럼 퇴출 대상을 명확히 가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칫 연쇄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하위권에 있는 수십여개 업체들은 통폐합을 통해 정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주채권은행이 업체별 구조조정 계획 또는 자구계획을 전제로 지원 방안을 조기에 마련토록 하고 신용위험평가 이전이라도 주채권은행을 통해 해운업종의 유동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자기 배를 보유하지 못하고 빌린 배를 다시 빌려주는 형태로 영업을 해오고 있는 해운사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심기/김현석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