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달러 박스'로 여겨져온 대형 조선업체들마저 극심한 수주 부진으로 인해 돈줄이 말라가고 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는 부족한 자금을 메우기 위해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발행하는 방안까지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7년여 동안 이어온 무차입 경영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조선 3사의 현금성 자산은 작년 9월 말 이후 6개월 만에 반토막이 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신규 수주가 사실상 끊기면서 선수금 유입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9월 말 4조원을 웃돌던 현금성 자산이 최근 2조원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의 현금성 자산도 2조원 안팎으로 6개월 만에 1조원 이상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8월부터 신규 수주가 끊긴 대우조선해양은 같은 기간 2조원대에서 1조원 이하로 급감했다.

대형 조선회사들은 지금의 현금성 자산으로는 올 상반기를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단기 자금 마련을 위한 회사채 및 CP 발행을 서두르고 있다. 2002년 회사채를 발행한 이후 지금까지 무차입 경영을 해온 현대중공업은 조만간 최대 1조원 안팎의 회사채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 계획을 아직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운용자금 마련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지난달 총 7000억원에 달하는 CP를 발행했으며 3000억~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추가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기종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조선 3사는 3~4년치 일감을 쌓아 놓고 있어 중 · 장기적인 유동성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단기적인 현금 흐름은 신규 수주 실종으로 인해 매우 아슬아슬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선박 발주 시장 침체는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진세조선은 외국 선주가 '워크아웃 진입'을 이유로 발주를 취소하는 동시에 선수금 환급을 요구,워크아웃이 중단 위기에 처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다른 중소 조선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되풀이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