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LG디스플레이 파주 LCD(액정표시장치) 공장.휴일임에도 액정과 모듈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24시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다음달에는 기존 라인에 비해 LCD 생산량을 1.5배 늘릴 수 있는 8세대 공장도 새로 가동을 시작한다. 판매 부진으로 넘쳐나는 재고를 감당하지 못해 감산과 조업중단에 나선 자동차 철강 등 다른 제조업체들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LG디스플레이도 지난 연말에는 불황의 그늘을 피하지 못했다. 직원들에게 8~9일간의 장기 휴가를 주며 공장 가동률을 60%까지 줄여야 했다. 반전이 시작된 것은 지난 1월 중순.32인치대 TV용 LCD패널을 중심으로 주문이 늘어나면서 공장가동률이 드라마틱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김인수 파주 모듈공장장은 "재고 관리를 위해 연말에 감산까지 했지만 이제는 주문받은 물건을 제때 공급하기 힘들 정도로 바빠졌다"며 "1월 TV용 패널 시장에서 1위에 오르는 등 공격적 마케팅에 나선 결과"라고 설명했다.

◆1월 TV용 패널 세계 1위 도약

LG디스플레이가 불황을 무색케 할 정도로 공장 가동률을 높일 수 있던 것은 위기를 시장 판도 변화의 기회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호황기인 지난해부터 지역별로 나눴던 영업망을 개별 고객 중심으로 바꾸고 공격적 마케팅을 펼친 게 주효했다. 애플,HP 등 주요 고객별로 담당자를 배치해 모든 업무를 고객 입장에서 처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 회사는 지난 1월 TV용 LCD 시장에서 2005년 이후 4년 만에 세계 1위(점유율 28.1%) 자리에 올라섰다. 대만 CMO,일본 샤프 등 경쟁사들이 모두 1월 TV패널 판매에서 뒷걸음질치는 동안 판매량을 19%나 늘리는데 성공했다. TV사업부에서는 최근 이를 기념해 이례적으로 파주 공장 직원들에게 떡까지 돌렸다.

해외마케팅팀 관계자는 "영업조직 개편 후 가장 달라진 것은 고객과의 유대관계"라며 "지난해 일부 품목에서 공급 부족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자기 고객을 챙기려는 사원 간의 경쟁이 치열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원가경쟁력에서 대만 · 일본에 한수 위

LG디스플레이와 달리 대만과 일본의 경쟁업체들은 아직도 50~60% 수준의 가동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문이 늘었지만 원가 이하로 떨어진 가격에 맞춰 무작정 생산을 확대했다가는 적자만 커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고민이다.

반면 LG디스플레이는 바닥 수준의 LCD 가격에도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갖췄다. 환율이 올라 해외업체들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향상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호황기 때부터 '극한운동'이란 이름으로 원가를 줄이는 노력을 펼친 게 위기 때 빛을 발휘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파주 각 공장에는 생산량 극대화를 담당하는 20~30여명의 '맥스캐파팀'이 활동하고 있다. 공정 단계마다 불필요한 과정을 찾아내 없애고 생산능력을 높일 수 있는 갖가지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 결과 과거 장비업체가 정해준 스펙대로만 운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자체 통계를 바탕으로 설비 가동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김인수 공장장은 "정확한 원가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신규 시설 투자없이 극한운동을 통해서만 15인치 모니터 모듈 라인의 하루 생산량을 기존 5000개에서 8000개 수준으로 늘린 사례도 있다"며 "LCD 가격이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상황을 감안하면 올해도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는 원가절감"이라고 강조했다.

파주=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