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美경제 장기침체 직면"…금융 구제자금 확대 촉구
"미국 금융시스템은 아직 안정되지 못했다. 금융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미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들 수 있으며,금융 정상화를 위해선 7000억달러 구제금융 외에 추가 자금이 더 필요하다. "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이 한마디가 'AIG 쇼크'로 혼란에 빠진 미 증시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설상가상으로 미 금융사들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되고,S&P500 지수 편입 500개 종목들의 전체 실적마저 63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는 등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버냉키 의장은 3일 상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금융시장이 일정 수준까지 안정을 되찾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경제회복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침체에 빠진 경제를 구하기 위해선 재정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정부가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버냉키 의장은 특히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무엇보다 나를 제일 화나게 한 것은 헤지펀드처럼 운영해온 AIG를 구제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며 AIG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날 장 초반 상승세를 보였던 다우지수는 버냉키 의장의 우울한 전망이 전해지면서 5거래일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골드만삭스도 올 1분기 미 성장률이 -7%로 추락,작년 4분기(-6.2%)보다 경제가 더 위축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실물경제 침체 가속화에 따른 부실 확대로 미 금융사들의 신용등급이 잇따라 하향 조정된 것도 투자자들의 심리를 위축시켰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낮추고,향후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제시했다. 이번 하향 조정은 작년 12월 이후 3개월 만이다. BOA는 대출 고객들의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17년 만에 처음으로 작년 4분기 17억9000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미 2위 채권보증업체인 암박파이낸셜도 이날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이 '정크(투기등급)' 수준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암박 보증사업부의 신용등급은 작년 6월 'Aaa'에서 계속 떨어져 현재 'Baa1'에 머물고 있다. 암박은 작년 4분기 23억4000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앞서 S&P는 지난달 푸르덴셜파이낸셜,메트라이프,하트포드파이낸셜 등 미 10개 생명보험사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낮췄다.

S&P500 지수 편입종목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도 1936년 이후 처음 적자로 돌아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4일 S&P의 자료를 인용,S&P500 지수에 포함된 500개 상장사들의 작년 4분기 총 순손실이 1760억달러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3분기엔 849억달러의 흑자를 냈었다. 상장사 가운데 적자를 낸 곳은 총 135개사로,이 가운데 44개사가 10억달러 이상의 순손실을 보였다.

뉴욕=이익원 특파원/이미아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