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주가 폭락, 달러 3년래 최고

2일 미국 뉴욕증시의 주가가 12년전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등 전세계 주식시장의 주가가 추락하고 유가도 급락한 반면 미국 달러는 급등하는 등 전세계 금융시장의 '공포'가 다시 살아났다.

직접적인 타격의 원인은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한 미국 AIG의 실적과 영국 HSBC 실적 악화, 워런 버핏의 암울한 전망 발언 등이었지만, 이런 원인의 밑바닥엔 금융불안과 경기침체, 나아가 장기 불황에 대한 '공포'가 깔려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기부양책과 씨티그룹 국유화, AIG 금융지원 등 온갖 대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불안감이 누그러들지 않고 있는 만큼 침체의 장기화에 대한 대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전세계 주가 동반 급락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AIG의 실적발표를 계기로 금융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다우지수 7,000선이 무너지면서 6,700선대로 내려앉는 등 각 지수가 일제히 급락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지난 주말 종가보다 299.64포인트(4.24%) 하락한 6천763.29를 기록했다.

다우 지수를 구성하는 30개 우량종목이 모두 하락한 이날 지수는 1997년 4월 이후 최저치 기록마저 갈아 치웠다.

나스닥 종합지수는 54.99포인트(3.99%) 하락한 1,322.85로 거래를 마쳤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34.27포인트(4.66%) 내린 700.81로 마감, 1996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럽 각국의 주가도 폭락세를 면치 못했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의 FTSE 100지수는 5.21% 급락한 3,630.40, 프랑스 파리증권거래소의 CAC 40 지수는 4.44% 떨어진 2,582.60으로 각각 마감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증권거래소의 DAX 지수는 3.88% 급락한 3,694.64를 기록한 가운데 장을 마감했다.

범유럽 다우존스 스톡스 600지수도 3.3% 급락해 167.27을 기록했다.

런던의 FTSE 100지수와 범유럽 다우존스 스톡스 600지수는 2003년 이래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였다.

도쿄 증시에서도 닛케이지수가 전 주말보다 288.27포인트(3.81%)나 하락한 7,280.15로 마감, 버블 붕괴후 최저치에 육박했고, 한국의 코스피지수는 44.22포인트(4.16%) 떨어진 1,018.81로 마감돼 1,000선을 위협했다.

런던에 소재한 핸더슨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알렉스 크루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악성 부채가 계속 나타나는 등 경제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라면서 당분간 약세장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 미 달러 3년래 최고, 불안지수 급등


주식시장에서뿐 아니라 외환시장이나 상품시장에서도 불황과 금융불안에 대한 공포로 인해 달러가치가 치솟고 유가가 폭락했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는 AIG 부실 여파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에 몰리면서 달러가치가 2006년 4월 이후 2년10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유로와 엔 등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88.969로 상승해 2년10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오후 4시 현재 유로는 1.2575달러에 거래돼 지난 주말 종가보다 달러가치가 0.8% 올랐다.

유로는 이날 장중 1.2546달러까지 떨어져 지난달 19일 이후 최저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로는 엔화에 대해서도 전 주말 123.61엔에서 122.51엔으로 0.9% 떨어졌고 엔화는 달러당 97.44엔으로 소폭 하락했다.

유가는 수요 부진에 대한 우려로 10%가 넘게 폭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주 종가보다 4.61달러(10.3%) 하락한 배럴당 40.15 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의 이날 낙폭은 지난 1월7일 이후 두 달 만에 최대폭이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4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4.09달러(8.8%) 하락한 배럴당 42.26 달러에 거래됐다.

이처럼 주가가 급락하면서 증시의 불안감을 나타내는 VIX 지수도 치솟았다.

이날 시카고옵션거래소에 상장된 S&P 500 지수옵션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VIX지수는 15% 급등한 53.09까지 치솟았다.

◇ 침체 장기화 전망 확산

이런 금융시장 불안의 바닥에는 진정되지 않는 침체 장기화에 대한 공포가 깔려있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전날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미국의 침체가 올해 말까지 지속됨으로써 대공황 이후 최장기간인 24개월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2011년까지 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해 사실상 '36개월'간의 침체가 지속될 것이며 적절한 정책대응이 없다면 L자형의 불황(Depression)이나 일본이 1990년대에 경험한 스테그-디플레이션(스테그네이션+디플레이션)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대공황(Great Depression)' 대신 `대(大)침체(Great Recession)'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우리가 현재 이런 `대침체'속에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고,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올 하반기 수치상의 일시 반등이 있더라도 이는 회복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이날 주가 폭락에 대해 사모투자그룹인 스티펠 니컬러스의 조 베티패글리어 수석시장전략가는 "이번 침체가 깊고 장기화될 것이며 회복세는 미미할 것라는 점을 투자자들이 마침내 이해했다."면서 "그리고 정부는 신뢰를 불어넣는 어떤 해결책도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뉴욕증시의 투매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주식이 모두 없어져야 시장이 멈출 것"이라는 한 주식중개인의 말을 전하면서 주식거래 중개인뿐 아니라 일반 개미 투자자들도 주식을 대거 처분하면서 증시를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