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 금융회사 국유화 물결이 거세다. 경기 침체와 부동산경기 급락의 악순환 속에 금융회사 부실이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정부가 은행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고서는 시장 자체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커졌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정부는 구제금융으로 의결권이 있는 은행 지분을 확보하면서 경영에도 본격적으로 간섭할 태세다. 하지만 금융사 부실을 완전히 청소해 시장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AIG도 사실상 국유화 단계 진입

로이터통신은 미국 정부가 씨티그룹을 사실상 국유화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최대 보험사인 AIG와의 추가 구제금융 지원 협상도 합의가 임박했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IG 이사진은 1일 이사회를 열어 정부의 구제금융 조건에 대해 의결한 뒤,2일 분기 실적 공개 때 협상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AIG는 작년 4분기 사상 최대인 600억달러의 손실을 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합의안에는 AIG가 발행하는 300억달러 규모 주식을 정부가 사주고,정부가 보유 중인 우선주에 대한 배당 조건 및 600억달러에 달하는 정부 지원자금의 이자율을 낮추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AIG는 현재 정부 대출금에 대해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에 3%포인트의 가산금리를 얹은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 대신 AIG는 생명보험 사업부문인 아메리칸라이프인슈어런스의 소유권 등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넘길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보유 중인 보험 자산을 증권화해 정부에 넘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사실상 국유화되는 셈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 재무부는 보유 중인 씨티그룹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최대 36%의 지분을 획득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부 지분의 우선주 전환은 싱가포르투자청(GIC),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등 민간 주주들이 보유한 275억달러 규모의 우선주도 보통주로 전환한다는 조건 아래 이뤄진다. 뉴욕타임스(NYT)는 금융사 재무건전성을 평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자본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정될 경우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웰스파고 등 다른 주요 은행들도 씨티그룹과 비슷한 입장에 놓일 수 있다고 전했다.


◆끝모를 부실,유럽 휩쓰는 국유화 바람

유럽에서는 이미 금융사 국유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26일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부실자산 3250억파운드(4620억달러)를 지급 보증하고,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65억파운드어치의 우선주를 받기로 했다. RBS는 지난해 순손실이 241억파운드(343억달러)로 사상 최악의 적자를 냈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18일 4위 은행인 히포레알에스테이트(HRE)를 국유화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주 케스 데파르뉴와 방크 포퓔레르의 합병으로 탄생하는 새로운 대형 은행에 최대 50억유로(64억달러)를 투입하고 우선주 지분 20%를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카자흐스탄 아이슬란드 등도 이미 주요 은행을 국유화했다.

각국 정부는 국유화와 함께 △최고경영자(CEO) 파견 △이사진 개편 △임직원 보수 축소 △배당 제한 △대출 확대 유도 등 경영 개입 강도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합병은행 CEO로 엘리제궁의 경제담당 비서실 차장인 프랑수아 페롤을 파견했다. 씨티그룹은 현 CEO인 비크람 팬디트의 지위는 유지시키되 이사진을 전면 개편하고 배당도 삭감하기로 정부와 합의했다.

금융사들의 손실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독일 1위 은행인 도이체방크는 작년 4분기 48억유로의 적자를 냈고,유럽 최대 보험사인 독일 알리안츠도 같은 기간 31억1000만유로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골드만삭스는 유로권 은행의 손실이 9220억 유로(약 1조16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영국 HSBC은행은 신주 발행을 통해 170억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에 나서기로 했다.

이미아 기자/뉴욕=이익원 특파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