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팀 =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는 외국인 자금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달러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동유럽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와 미국 상업은행 국유화 논란, 3월 위기설 등 국내외 악재로 흔들리는 외환시장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외국인 국채투자 이자소득세 면제 등 제도개선에 나선 것이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인센티브가 외국인의 자금회수를 억제하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글로벌 신용경색이 재차 심화되고 있어 신규 자금을 유치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 정부, 외환시장 불끄기
26일 정부가 외화유동성 확충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은 것은 최근 외환시장의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동유럽 금융불안 등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었다.

일부 동유럽 국가의 부도시 동유럽 대출이 많은 서유럽 금융회사들이 다른 지역에서 자금회수에 나서고 한국 등 신흥국가들의 외화유동성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국제결제은행(BIS)이 파악한 작년 9월 말 기준 전세계 신흥국의 총 대외채무는 4조5천930억 달러로 이 중 73%인 3조3천690억 달러가 유럽계 은행에서 차입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총 외채 3천662억 달러 중 2천93억 달러(57%)가 유럽계은행 자금으로 중국(47%), 대만(55%), 말레이시아(43%), 인도네시아(49%) 등 아시아 주요국에 비해 유럽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따라서 동유럽발 위기가 가시화될 경우 국내 금융회사의 외화차입 여건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은행 국유화를 부인하던 미국 정부가 씨티그룹의 보통주 25~40%를 보유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발 악재도 재차 부각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이 같은 대외악재로 인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17.50원으로 마감하면서 1998년 3월13일 이후 10년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환율은 지난 10일 외국인의 증시 이탈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상승세를 본격화하면서 13거래일 만에 136.50원 폭등했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은 "외국인의 증시 이탈로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정부가 외국인을 붙잡으려고 대책을 내놓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시장 개입보다 공급 확대 초점
정부는 섣부른 외환시장 개입보다는 달러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외국인이 한국 국채나 통안채에 투자하는 경우 이자소득에 대한 법인.소득세 원천징수를 면제하고, 외국인, 재외동포 등으로부터 외화예금이나 펀드투자를 위한 외화자금 유입이 증가하도록 세제혜택과 규제완화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또 상.하반기 1회 이상 외화 외평채를 총 60억 달러 발행하고, 정부보증을 활용한 은행 해외차입, 공기업의 해외채권발행을 독려하기로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국인 채권 투자자 중에 이자소득세 원천징수를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다"며 "이번 제도개선으로 외국인 자금의 신규 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직접적인 시장개입을 자제하는 대신 달러 공급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해석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금융불안이 진정되기 이전에는 시장개입이 효과에 비해 비용이 클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외화유동성 확보를 직간접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 신규자금 유입효과는 '글쎄'
이번 대책으로 외국인 신규자금이 유입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정 수석연구원은 "국공채 투자에 비과세 혜택을 주더라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되고 신흥시장으로부터 자금이탈이 지속되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임지원 JP모건체이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대책은 한국에 들어오는 자금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인데 단기적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글로벌 신용경색이 완화돼야만 효과를 낼 수 있고 기본적으로 한국 채권에 투자하겠다는 수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대책은 다 내놓아도 외화보유액만은 가능한 사용하지 않겠다는 시그널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경제조사실장도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억제할 수는 있겠지만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외국인들이 자산을 축소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신규유입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통화스와프 확대와 만기연장 등 추가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실장은 "올해 10월 말로 끝나는 한미 통화스와프를 연장하거나 유럽연합(EU) 등 다른나라로 통화스와프를 확대하는 조치가 외환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수석연구원은 "단순히 외화유동성 확보 수준을 넘어 쏠림현상이 있는 국내 외환시장의 시스템과 경상수지 구조를 개선하는 방안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