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외환보유액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가 지난해 메릴린치에 투자했다가 15억달러 가까이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KIC는 지난 2006년부터 220억달러를 주식과 채권에 투자해 모두 44억달러가 넘는 손실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백재현(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KIC는 지난해 1월 메릴린치에 전략적으로 투자한 20억달러의 수익률이 지난 1월말 기준으로 -72.52%를 기록했다. 손실액만 14억5000만달러.

KIC는 지난해 1월15일 글로벌 투자은행(IB) 투자라는 명목으로 20억달러 가량의 메릴린치 주식을 사들였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메릴린치가 부실자산을 대규모로 상각한 끝에,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에 인수되는 과정을 거치며 주가가 급락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KIC는 지난 1월말 현재 메릴린치를 인수한 BoA의 보통주 6209만주 가량을 보유 중이다.

KIC는 지난 2006년 11월 채권투자를 시작으로 모두 220억달러를 채권과 주식 등에 투자했다.
하지만 지난달말 기준으로 평가손실은 모두 44억6000만달러로, 원달러 환율을 1500원으로 환산했을 경우 6조7000억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KIC 운용자산은 외환보유고의 다른 형태여서, 이만큼 외환보유고가 축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10억9000만달러를 투자한 채권에서는 5억9000만달러의 평가이익이 났지만, 89억1000만달러를 투자한 주식에서는 40% 수준인 36억달러의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KIC는 그러나 이같은 손실에도 불구하고 운용 위탁자산을 올해 300억달러로 확대하고 외환보유액과 외국환평형기금 외에 연기금 등으로 위탁자산의 재원을 다변화하겠다고 보고해 빈축을 사고 있다.

KIC는 설립당시 한은 등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가 '국부펀드'를 지향해 만든 기구이지만, 벤치마킹 대상인 싱가폴의 테마섹이나 중동펀드들이 최긑 막대한 손실을 보면서 설립 강행 자체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백 의원은 "외화자산을 위탁한 한은과 기획재정부가 채권과 주식에 대한 투자율을 6:4로 맞추도록 했지만 KIC의 주식 투자비율이 44% 초과했다"며 "이를 총괄했던 구안옹 전 운용본부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ㅈ장했다.

KIC측은 이에 대해 "지난해 글로벌 유동성 부족이 심화되면서, 대부분의 글로벌 투자기관이 운용기준을 하회하고 있다"며 "지난해 하반기 이후 포트폴리오 방어전략을 실행하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올해 들어서는 수익률이 개선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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