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은행국유화 가능성 평가절하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4일 미국이 올해 경제침체에서 벗어나려면 금융시장 안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노력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침체가 올해 안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씨티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미 주요은행들의 국유화 문제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하는 발언을 통해 당장 이뤄질 가능성이 낮음을 시사했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경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조치와 더불어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정부와 의회, 중앙은행이 취한 조치가 금융시장 안정을 회복하는 데 성공해야만 현재의 경제침체가 올해 끝나고 2010년이 경제회복의 해가 될 수 있다는 게 합리적인 전망"이라며 "경제가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2-3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가 올해 안에 회복할 것으로 기대는 되지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금융시장 안정이 먼저라는 것이다.

버냉키 의장은 "경제가 강력한 모습으로 회복하려면 금융시스템 안정이 뒷받침되어야만 하며 그것은 흑백만큼이나 명명백백하다"면서 "금융시장을 안정화하지 못하면 당분간 더 흔들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경제가 둔화될 위험 때문에 미국의 수출이 줄고 예상보다 금융시장의 여건을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버냉키 의장은 "경제활동 전망은 상당히 불확실하며 경기하강 위험이 대체로 상승보다는 높다"고 지적했다.

또 버냉키 의장은 연방정부가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몇 개 주요은행 국유화 추진에 대해서는 경제가 더 악화돼 금융기관에 더 많은 추가 손실이 일어날 때나 가능하다고 지적, 당장 성사될 사안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손실 충당에 얼마나 많은 자본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기 위해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를 실시한 뒤 재무부가 19개 주요은행들의 전환우선주를 사들일 계획이라며 과도한 손실이 발생했을 때만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지난 10일 최대 2조달러를 투입해 금융회사의 부실자산을 인수하고 대출을 확대하는 금융안정계획을 발표하면서 자산 1천억달러 규모 이상이거나 자금지원이 필요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대출 확대와 잠재손실 흡수를 위해 자본 확충이 필요한지를 판별할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버냉키 의장은 "안 좋은 시나리오에서 예상되는 손실이 실제로 발생하기 전까지는 지분의 의미는 없다"며 스트레스 테스트가 국유화를 암시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은행 국유화를 공식화해 법적으로 엄청난 불확실성을 불러 일으키거나 (이들 은행이 보유한) 프랜차이즈 가치를 훼손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이날 주식시장에서 재무부의 자본 투입계획이 은행 주주들의 지위를 손상시키고 정부의 은행 국유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크게 해소, 은행 주 급등의 기폭제가 됐다.

이와 함께 버냉키 의장은 미국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벌써 수백만명의 일자리를 앗아간 경제침체로부터 미국을 구해내기 위해 활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는 사실상 제로금리 상태에서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더 쓸 수 없기 때문에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국채와 모기지 채권의 대규모 매입을 통해 통화공급량 자체를 늘리는 `양적 완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워싱턴연합뉴스) 김재홍 특파원 jaeh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