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쓸 곳은 많은데 쓸 돈은 없다. "

"눈높이는 낮출 수 없다. "

"생활을 즐기려면 어느 정도 낭비도 필요하다. "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하고 10여년이 지난 현재 소비자들의 모습이다. 소비자들은 '불황 알레르기'가 생겨 실제 경기지표보다 더 피부로 느끼는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질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제일기획은 22일 전국 5대 도시(서울 · 부산 · 대구 · 광주 · 대전)의 13~59세 소비자 3500명을 대상으로 라이프스타일과 상품 구매 및 이용 행태 변화를 분석한 '1998~2008 대한민국 소비자 보고서'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체감 생활 수준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빠졌다. 스스로 중류층이라고 여기는 비율이 1998년 60%에서 55%로 줄었고 하층 · 중하층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거꾸로 33%에서 37%로 높아졌다.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제품이 고급화 · 대형화하고 브랜드가 다양해져 눈높이가 높아지고 씀씀이는 더 커졌다.

도시 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1998년 207만원에서 지난해 399만원으로 약 2배 늘어난데 비해 가계 빚은 1321만원에서 4054만원으로 3배 이상 불어난 점이 이를 입증한다. 실질소득과 '희망소득'의 간극이 커지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은 1998년 67%에서 지난해 79%로 치솟았다.

이에 따라 경기 변화에 따라 소비를 신축적으로 조정하는 이른바 '고무줄 소비' 행태가 두드러졌다는 게 제일기획의 분석이다.

실제로 '옷은 주로 세일 기간에 산다'는 답변이 1998년 61%에서 경기회복기인 2002년 45%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52%로 올라갔다.

또 '경제적 여력과 관계없이 절약해야 한다'는 인식도 같은 기간 '70%→57%→67%'로 오르내렸다. 박재항 제일기획 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은 "외환위기와 이후 각종 경제 변화는 소비자를 '실제 지수'보다 심리적인 '체감 지수'에 크게 반응하는 체질로 바꿔놓았다"고 설명했다.

불황 속에 가족을 가장 중시하는 인식(2000년 71%→2008년 86%)은 더욱 높아졌다. 반면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은 약화돼 '직업 선택 때 급여보다는 안정성을 고려한다'는 응답(73%→49%)은 뚝 떨어졌다.

제일기획은 불황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합치고(Integrate) △나누고(Divide) △부수고(Explode) △알리는(Announce) 'I · D · E · A 마케팅'이 효과적이라고 제시했다. '1+1'이나 패션과 전자제품을 결합하거나(합치기),남성화장품이나 와이셔츠 전용세제처럼 백인백색의 소비자들을 세분화하거나(나누기),또 카카오를 건강식품으로 부각시킨 다크 초콜릿처럼 기존 방식을 깨거나(부수기),과감한 광고 투자로 성공한 쿠쿠 · 아이오페처럼 불황 때 더 소비자들과 네트워크를 강화(알리기)하라는 얘기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