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 나가던 동유럽 국가를 비롯한 옛 공산권 국가들이 금융위기에 발목이 잡혔다.

서유럽 부국들을 따라잡겠다는 야심찬 꿈은 커녕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는 참담한 상황이다.

동유럽이 선진국의 자본유입에 힘입어 고속 성장해왔기 때문에 동유럽의 디폴트 우려는 이제 서유럽 은행을 비롯한 국제 금융시장을 짓누르면서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 우크라이나ㆍ헝가리ㆍ라트비아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우크라이나, 헝가리, 라트비아 등 3국이 동유럽 디폴트 우려의 진원지로 꼽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통화 가치는 작년 9월 이후 60% 가까이 급락했다.

주식시장은 75% 폭락했으며 은행시스템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져들었다.

최근 IMF가 우크라이나 정부가 재정지출 축소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구제금융 2차분 19억달러의 집행을 미루면서 위기가 더욱 고조되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에 자금 투입을 검토 중인 유럽부흥개발은행(EBRD)도 약속된 IMF 구제금융이나 서유럽의 지원을 받으려면 IMF 조건을 이행해야 한다고 우크라이나의 재정적자 축소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올 연말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과 율리아 티모셴코 총리간 대립이 격화하고 있는 정치 상황도 재정적자 완화 등 경제위기 극복 의지에 대한 불신을 낳고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다수의 경제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디폴트 우려가 연내 현실화될 것으로는 보지 않으면서도 기업부문의 부도 사태는 우려하고 있다.

헝가리는 국제적 신용평가회사들의 '요주의' 리스트에 올라있다.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관계자들은 "헝가리 상황을 특히 우려해 주시하고 있다"면서 헝가리의 위험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헝가리 경제는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마이너스 2.0%를 기록, 3분기(-0.5%)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물가상승률도 경기 침체로 인해 2007년의 8.0%에서 2008년 6.1%로 떨어졌다.

헝가리 포린트화 가치는 올들어서만 30% 가까이 급락하며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 역시 엄청난 재정적자와 가파른 경기 침체로 디폴트 선언 전망을 낳고 있다.

라트비아 재무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의 마이너스 5%에서 마이너스 12%로 대폭 하향조정하며 급격한 경기 위축을 받아들이고 있다.

서유럽의 주요 교역 상대국과의 수출 부진으로 인해 전체 수출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올해 경상적자가 GDP의 7.3%에 이를 전망이다.

◆ 루마니아ㆍ불가리아ㆍ리투아니아 등도 '잠재 위험'

금융시장에서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의 동유럽 국가들도 IMF 구제금융 지원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내다보는 시각이 많다.

에스토니아 경제는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9.4%나 위축됐다.

지난 2006년 성장률이 10.4%까지 오르는 등 최근 수년간 잘 나가다 고꾸라지는 바람에 충격이 더욱 크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유럽에 확산되고 있는 금융위기는 폴란드의 즐로티화와 체코의 코루나화 가치를 올들어 22%씩 끌어내렸다.

대외자금 유입에 의존하는 동유럽 경제의 특성상 외국은행들이 본격적인 자금회수에 나설 경우 금융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동유럽의 특정 국가가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동유럽 국가들의 연쇄 부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루마니아 등 상대적으로 여건이 양호한 국가들에 대한 비관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유로존(유로화 사용 유럽연합 국가) 은행들이 동유럽에 대출해 준 자금이 1조5천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날 현재 동유럽이 겪고 있는 위기는 과거 신흥국들이 겪었던 위기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형적인 신흥국의 위기는 신용 버블(거품)과 과도한 외화차입으로 시작해 신용 버블이 어떤 계기를 통해 붕괴되고, 이는 자국통화 가치를 급격히 절하시키면서 은행권과 정부의 자금조달 능력을 붕괴시키는 악순환을 형성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FT는 지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와 달리 현재 전 세계 경기여건은 당시에 비해 매우 취약한 상황이 다른 점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ju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