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시 송탄산업단지에 있는 HKR 공장.지름이 1~3m에 이르는 '一'자,'ㄱ'자 모양의 파이프(관류) 및 'U'자,'S'자 형태의 주름관을 만들기 위한 용접 작업이 한창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발전소나 석유화학공장 등에 쓰이는 특수관인 '익스팬션 조인트(Expansion Joint)'.고온이나 초저온 열 · 냉기와 스팀이 통과하는 파이프가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현상을 흡수하도록 고안된 완충용 설비장치다.

"이 제품들은 모두 맞춤형으로 제작됩니다. 여기 있는 길이 8m짜리 익스팬션 조인트가 차세대 주력 상품입니다. 풍력발전소에 설치하는 비상발전기에 쓰이는데 대당 50만달러쯤 하죠."(노종진 대표)

HKR는 산업용 파이프의 이음관용으로 활용되는 익스팬션 조인트 및 '벨로우즈'(익스팬션 조인트를 구성하는 주름관 모양의 핵심 부품)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업이다. 총 600억원대에 이르는 전체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창업주 노상훈 회장(85)이 한국나선관(현 HKR)을 설립한 때는 1972년.그러나 노 회장의 '파이프 인생'이 시작된 것은 사실 이보다 훨씬 오래 전의 일이다.

고향인 함경도 함흥을 등지고 단신으로 월남한 그는 6 · 25 전쟁이 막바지인 1953년 영등포역 일대에 자리잡았다. 당시에는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우물을 파는 일이 흔했다. 이를 눈여겨 본 노 회장은 우물펌프에 쓰이는 파이프를 만드는 일로 생계를 잇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에 기차 정비공으로 일하던 시절 파이프를 다뤘던 경험을 살린 것이다. 일거리가 많아지면서 조그만 상점을 냈고 버려진 파이프 등이 쌓이자 고물상까지 차렸다.

누구나 인생에서 세 번쯤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던가. 이 무렵 노 회장에게 전쟁의 포화로 불타버린 인근 문래동 방직공장의 주물로 된 폐설비를 인수하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당 15환을 주고 사온 주물 덩어리를 25환에 팔아 넘기면서 엄청난 차익을 얻었다. 요즘으로 치면 10억원쯤 하는 거금이었다. 사업 밑천을 확보한 노 회장은 1955년 서울역 앞 동자동에 파이프 도매상인 '삼신상공사'를 차렸다. 마침 전후 복구사업 등으로 건설경기가 활황이던 터라 파이프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이듬해 노 회장은 또 한 번의 행운을 맞는다. 무역상사 직원을 통해 일본으로 넘어간 고향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파이프 일을 하는 노 회장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친구가 일본 업체(후지 벨로우즈)를 소개해준 것이다. 노 회장은 수시로 일본을 오가며 후지 벨로우즈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았다. 어느 정도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판단한 노 회장은 1958년 문래동에 '삼부정공사'를 설립,소형 벨로우즈가 들어가는 라디에이터용 스팀 조절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벨로우즈와 함께 댐 등에 쓰이는 주물 밸브 생산으로 사세를 확장한 삼부정공사는 한때 350명을 고용할 정도로 승승장구했지만 1972년 '8 · 3 사채동결 조치'를 맞아 부도 위기에 몰렸다. 노 회장은 "기업들이 끌어쓴 고리의 사채 상환을 동결하기 위해 8 · 3 조치가 시행됐지만,제도권 금융 혜택을 받기 어려웠던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자금줄이 막히는 부작용에 시달렸다"고 회고했다. 끝내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 노 회장은 회사를 헐값에 넘겼다.

사업 실패로 망연자실하던 노 회장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 지나서였다. 과거 가깝게 알고 지내던 일본인과 조우하게 된 것.이 일본인이 배관설비 제조업체 VENN사의 대표였던 고(故) 가네코씨다. 가네코씨는 서울대 관악캠퍼스 신축에 들어가는 배관설비를 수주하기 위해 한국에 들른 길이었다. 가네코씨의 권유로 노 회장은 1972년 한국나선관을 설립한 뒤 1974년 VENN사와 기술교류 협정을 맺고 그해 국내 최초로 익스팬션 조인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미 확보한 벨로우즈 기술이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한국나선관은 이후 원자력발전소,화력발전소,포항제철 등에 잇따라 익스팬션 조인트를 납품하면서 대표적인 토종 업체로 자리잡았다. 점차 사세가 커지면서 공장이 비좁자 1992년 평택으로 옮겨왔다.

노 회장의 차남인 노종진 대표(48)가 가업을 물려받은 것은 2000년.지분을 넘겨받은 것이 아니어서 세금 문제 등 승계 과정은 비교적 순탄했다. 마침 창업 공신들이 은퇴할 무렵이어서 임직원과의 갈등도 크지 않았다.

마케팅을 전공한 노 대표는 수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해외 전시회에 잇따라 참가하는 한편 유수의 글로벌 업체들을 상대로 수주를 따내기 위해 뛰어다녔다. 하지만 무명의 한국 중소업체 기술력을 믿지 않는 발주처의 인식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LNG선에 익스팬션 조인트를 납품하기 위해 선주인 대만 업체를 2년간 쫓아다니기도 했다. 내부적으로는 기술개발에 주력하는 한편 미국 기계협회(ASME)가 인증하는 U,PP 등의 국제 품질인증을 잇따라 획득했다.

그 결과 2004년부터 수출길이 뚫리기 시작해 현재는 일본 도시바,히타치,미국 델탁,GE에너지 등에 납품하고 있다. 해외 거래가 늘면서 작년 1월부터는 사명을 글로벌 추세에 맞도록 HKR로 변경했다. HKR는 한국나선관의 발음을 따 영문 이니셜로 표기한 것이다.

HKR의 '크로스오버 파이프'는 각각 다른 스팀터빈 장치를 이어주기 위해 설치할 때 수평 오차범위가 0.5㎜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정밀하다. 이 같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2006년 도시바로부터 매년 2개 회사만 선정하는 '우수기자재 납품업체'에 뽑히기도 했다.

노 대표는 "용접 가공으로 만드는 제품의 오차범위가 1㎜ 이내라는 것은 웬만한 기술력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수준"이라며 "이처럼 품질을 인정받아 해외 시장을 뚫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풍력발전소의 비상발전기용 익스팬션 조인트 등 틈새 상품의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이다. 노 대표는 이 같은 흐름을 간파, 지난해부터 베트남 호찌민에 3000평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오는 5월 완공하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은 중동 인도 등에 판매할 계획이다. 지난해 360억원의 매출을 올린 HKR는 수출 호조에 힘입어 올해 매출이 400억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 대표는 "37년간 한우물을 팠듯 앞으로도 지속적인 품질 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평택=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