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병행해야 부메랑 방지"

금융팀 = `윤증현 경제팀'의 출범 이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긴급 대책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보증 확대와 일괄 만기 연장에 나서는 등 속도전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가계의 빚 부담 상환을 덜어주는 추가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한국은행은 정부가 추경 편성 재원으로 국채를 발행할 때 이를 인수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런 처방이 세계적인 경기 불황의 쓰나미를 넘으려면 불가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경제의 부실을 털어내는 기업 구조조정을 늦추는 것은 물론 기업과 가계,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며 부실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를 잠재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몇 년 뒤에 부메랑이 되지 않도록 옥석을 가려 지원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정부대책 속도전.."발등의 불 끄자"
18일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23만7천 개의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자에 대한 신용보증기관의 대출 보증 34조 원의 만기를 1년 연장하기로 지난 12일 발표했다.

지난 15일에는 진동수 금융위원장과 시중은행장들이 워크숍을 갖고 연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중소기업과 중소 상공인의 은행 대출 160조 원에 대한 만기도 1년 늘려주기로 했다.

정부는 경기침체에 따른 부실 우려로 은행들이 대출을 꺼려 중소기업이 흑자 도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긴급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은행자본확충펀드의 지원을 받더라도 경영권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국세청은 올해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대해 정기 세무조사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기업들이 세금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경제위기 극복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금융기관에 빚을 진 다중채무자 84만 명으로 대상으로 만기 연장과 금리 인하 등 프리워크아웃(사전 채무 재조정) 제도를 확대하는 대책을 조만간 내놓을 계획이다.

가계 대출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것으로, 정부는 작년 말부터 은행별로 이 제도를 도입하도록 권고했다.

지금은 3개월 이상 연체한 다중채무자가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채무 재조정을 받을 수 있는데 앞으로 3개월 미만 연체자도 지원해 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추경을 편성할 때 한국은행이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는 추경 재원으로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채권시장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낮은 금리로 발행해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한은이 인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마이너스 경제 성장이 예상되는 등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중소기업과 가계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속도감이 있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과감한 지원 불가피" vs "임기응변 안된다"
정부는 이런 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제난 극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은행과 중소기업이 정부 보증에 기대어 손쉽게 대출 영업을 하거나 자금을 빌리면 부실을 키우고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출 만기의 일괄 연장은 은행들의 건전성 악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신용보증기금이 보증 부실률이 작년 5.1%에서 올해 10%가량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하는 점에 비춰볼 때 올해 보증기관들의 보증 목표액 64조3천억 원 가운데 6조4천억 원 가량이 부실화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증 재원을 주로 정부 출연에 의존하는 것을 감안할 때 손실은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지금과 같은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도덕적 해이에 대한 걱정이 있는데 지금은 미국조차 중앙은행이 기업어음을 사줄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 연구원은 "지금은 어떤 정책이 경기 회복 시점을 앞당기느냐가 중요하고 부작용을 걱정해 정책을 취하지 않을 처지가 아니다"며 "중소기업과 취약계층 지원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연구원 구정한 연구위원은 "도덕적 해이의 부작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지만 우량 기업에만 자금이 갈 수 있도록 은행의 평가와 심사 기능을 강화하고 기업의 옥석을 가리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경기침체를 완화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면서도 "옥석 가리기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중소기업 채무 상환을 유예해주면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기 악화에 따른 실업 대란 우려로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가 후퇴하고 있고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우량 기업에 대한 선별적인 지원으로 경제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중소기업 대출 만기 연장의 경우 자금난 완화 효과가 있겠지만 가뜩이나 높은 중소기업의 정부 의존도를 더욱 높여 자연스런 구조조정을 방해하고 부실을 키워 나중에 은행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이 정부의 추경 편성을 돕기 위해 국채를 인수하는 것도 당장 국채 발행에 따른 시중금리 상승을 막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인플레이션 부담을 지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해 부실을 털어내고 영세 자영업자와 실직자들이 경기 한파를 견딜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은행 자본 수혈 계획과 관련, 한양대 하준경 교수는 "은행에 국민의 돈을 투입할 때 정부가 감시할 권리가 있다"며 "경영권 간섭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