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서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가 확산되는 등 금융위기 확산에 대한 공포가 또다시 불거지자 국내 은행주가 휘청이는 모습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은 일제히 은행주를 내던지며 은행주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자산의 건전성 및 수익성 악화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어서 은행 주가가 반등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증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은행주, 외인 매도로 동반 급락

18일 오전 11시 18분 현재 KB금융지주가 전날보다 1550원(5.07%) 내린 2만9050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을 비롯 기업은행(-4.27%) 신한지주(-3.79%) 하나금융지주(-3.30%) 외환은행(-3.11%) 등 시중 주요 은행주가 일제히 동반 하락세다.

특히 신한지주는 장중 2만3550원까지 떨어지며 52주 신저가를 기록, 작년 11월 금융위기가 정점에 달했던때보다 주가가 더 떨어졌다.

은행업종 지수와 은행계 지주사들이 속한 금융업종 지수는 각각 2~3%대의 약세를 기록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외국인의 매도가 은행주의 하락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은 금융주 비중을 최근 33.54%(17일 기준)까지 낮췄다. 이는 5거래일 전과 비교해 0.53%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전 업종 가운데 외국인 보유비중의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신한지주 주식을 지난 17일 157만여주나 매도한 외국인은 이날도 DSK 등 외국계 창구를 통해 '팔자'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KB금융지주 기업은행 하나금융지주 외환은행 등도 외국계 창구가 매도 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보유자산 부실, 생각보다 '심각'

외국인 매도는 무엇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가운데, 미국 증시가 급락한 영향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전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 나스닥종합지수는 각각 3.79% 4.56%, 4.15% 하락했다.

각종 실물경제 지표들이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서명한 7870억달러의 대규모 경기부양법인이 실물경제 침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게 미국증시 하락을 부추겼다.

여기에 러시아 우크라이나 리트비아에 이어 아일랜드 루마니아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국가의 금융 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온 것으로 알려지자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동안 잠재돼 있던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부실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다.

특히 시중은행들은 연체율 상승, 순이자마진(NIM) 악화, 유동성 악화,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등 작년 하반기 이후 줄곧 제기되어 온 문제들이 해결은 커녕, 개선될 조짐도 안 보이는 게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황헌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작년 4분기 은행 실적이 공개된 이후 불확실성이 걷히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 및 중소 조선사의 구조조정으로 은행권이 작년 4분기 상당한 규모의 대손충당금을 쌓았지만, 앞으로 충당금 부담이 더 늘어날수 있다는 것이다.

황 연구위원은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면 자연스럽게 각 업종별 구조조정이 진행될텐데, 이럴 경우 정부의 인위적인 구조정보다 그 충격은 훨씬 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작년 4분기의 대손충담금도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면서 "자산부실이 당초 은행들이 예상한 것 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갑 NH투자증권 연구위원도 "신한, KB 등 시중 주요은행 7곳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이 작년 4분기 1.2%를 기록해 전분기 대비 0.34%포인트 상승했고, 요주의여신비율도 1.67%를 기록해 0.69%포인트 악화됐다"며 "연체율 상승 등 은행의 자산건정성 악화가 올 1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은행의 자금난이 다시 가중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투자심리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우리은행은 최근 4억달러 규모의 10년 만기 외화 후순위채의 조기상환권(콜옵션)을 이례적으로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통상 은행은 후순위채의 만기 이전에 콜옵션을 행사해 조기 상환하는게 관례다. 하나은행도 정부 보증을 통한 외화채권 발행을 검토했다가 이를 최근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