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전문업체 행남자기는 국내 업계 최초로 지난해 12월 일본의 한 호텔에 자사의 호텔용 고급 식기 5000세트를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그간 일본의 도자기 시장은 위생과 안전에 대한 심의가 까다로워 국내 업체들이 진출을 포기하다시피 했던 곳이었다. 지난해 7월 노희웅 대표가 해외영업부에 일본시장 공략을 지시한 이후 담당 직원들이 몇 달간 바이어를 만나 계약 조건을 협의한 끝에 올린 성과였다. 5000세트를 사간 일본의 바이어는 한국적인 문양과 디자인으로 제작된 행남자기에 대한 현지 반응이 좋다며 지난달 1만 세트를 추가로 주문했다. 올해 회사는 일본 시장에서만 2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노 대표는 "일본 시장은 첫발을 들여놓은 것만으로도 큰 고비를 넘긴 셈"이라며 "노리다케,나루미 등 세계적인 명품 도자기 회사가 있을 뿐 아니라 전통적인 느낌의 도자기를 선호하는 현지 취향에 맞게 한국적 문양과 디자인을 살린 제품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

행남자기는 거래처였던 미국의 호텔 체인인 하얏트와 힐튼이 올해 자국 및 해외 사업장을 확장하는 것에 힘입어 올 상반기 중 지난해 미국에서 거둔 매출(300만달러)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약 700만달러어치를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미국에 수출될 물량만 약 200만점으로 납기를 지키려면 당분간 공장을 풀 가동해야 한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행남자기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다른 도자기회사의 수출 실적이 예년 수준을 유지하거나 최대 20% 줄어든 데 반해 행남자기는 지난 1월 수립한 2009년 수출 목표 1150만달러를 한 달 만에 1700만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무엇보다 시장 다변화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데다 원 · 달러 환율이 대폭 오르면서 가격 경쟁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회사는 수년 전부터 유럽 시장에 꾸준히 투자해 왔다. 유럽 시장은 세계 최대 도자기 소비처인 데다가 행남자기의 주력 제품인 본차이나의 인기가 높다. 회사는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든다는 목표로 포화 상태에 달한 고급 식기 시장보다는 유럽인의 취향에 맞는 생활 식기 시장 공략에 나섰다.

2000년 국내 업체로는 최초로 이탈리아에 디자인 연구소를 설립,'디자이너스 컬렉션' 등의 제품을 만드는 등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 왔다. 더구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불황으로 유럽 지역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로 쓰이는 고급 식기보다 가정에서 흔히 쓰는 생활 식기의 수요가 늘어난 것이 수출 증가에 한몫을 했다. 올해 고급 식기에 대한 유럽지역 수요는 약 15~20%감소하는 반면 생활 식기는 20% 이상 증가한다는 것이 업계 추산이다.

회사는 올해 유럽에서 지난해보다 40% 이상 늘어난 700만달러어치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한국 드라마에 나왔던 제품들의 인기에 힘입어 중국에서 100만달러어치를 판매했다. 올 들어서도 '한류 제품'에 대한 인기가 지속되고 있어 매출이 2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공격적인 마케팅 차원에서 중국 전역에 설치된 10개 매장을 2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노 대표는 "경쟁사들이 한정된 고급식기 시장에서 싸움을 벌이는 동안 다른 수익원을 만들 방법을 궁리했다"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위주인 고급 자기보다는 우리 브랜드로 값싸고 품질 좋은 가정용 식기를 만드는 데 꾸준히 노력한 결과 소비자들에게 행남자기의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 1~2위를 다투던 미국의 레녹스와 영국의 웨지우드가 지난해 파산을 신청하는등 전세계 도자기업계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며 "한국적 도자기를 바탕으로 지역별 특화전략을 펼쳐 세계적인 명품도자기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