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지난해 4분기(10~12월) 경제성장률이 -12.7%(연율 기준)라는 발표가 나온 16일 요사노 가오루 경제재정담당상은 기자회견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경제위기"라며 "하지만 성장률 수치를 보고 놀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올 1분기를 포함해 앞으로도 이 같은 마이너스 성장세가 지속될 수 있다는 강력한 암시였다. 일본 경제가 세계 동시 불황과 엔고로 35년 만에 최악의 성장률을 보이는 등 휘청거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또다시 잃어버린 10년이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엔고'발 수출급감이 결정타

금융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던 일본 경제의 하강 속도가 이처럼 빠른 것은 급격한 엔고 탓이 크다. 세계 동시 불황으로 수입 수요가 위축된 가운데 엔화 가치마저 폭등해 일본 수출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중 일본의 엔화 가치는 20% 가까이 올랐다. 같은 기간 수출은 전기 대비 13.9% 줄었다. 분기별로는 사상 최대 감소폭이다.

물론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로 한국(약 40%)에 비해선 작다. 그럼에도 워낙 감소폭이 크다 보니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수출 감소는 일본의 4분기 성장을 3%포인트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의 주력 수출품목인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경기에 민감하다는 점도 약점이다. 이들 제품은 대개 목돈이 필요한 내구재여서 불황기에 수요가 가장 먼저,가장 많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또 GDP의 60% 비중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0.4% 감소하는 등 내수도 위축된 게 성장률 추락을 부채질했다. 엔고→수출 악화→기업 감원→소비 감소의 '엔고발(發) 수출 · 내수 동시 불황'이 일본 경제를 덮쳤다는 얘기다.

◆허약한 정부가 불안 가중

아소 다로 총리의 지지율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전후 최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비전과 해법을 내놓기는커녕 아소 총리는 가벼운 언행으로 민심을 잃고 있다.

이달 초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14%를 기록했던 아소 내각 지지율은 지난 주말 니혼TV 조사에선 9.7%까지 떨어졌다. 아소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추락한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추진한 우정민영화에 대해 최근 그가 "난 찬성하지 않았었다"고 말해 논란을 자초한 게 화근이었다.

지지율이 낮은 것은 각종 경기부양책의 '약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 정부는 작년 하반기 세 차례에 걸쳐 12조엔의 재정을 지출하는 경기진작책을 내놓은 데 이어 올 상반기에도 25조엔 안팎의 추가 대책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언제 수명이 끝날지 모를 허약한 정권이 강력한 경기대책을 성공시키길 기대하긴 어렵다는 분위기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