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USB형 무선데이터 모뎀 제조업체인 씨모텍의 서울 여의도 본사는 요즘 활기를 되찾았다. 지난해 키코(KIKO) 사태에 휘말려 100억여원을 허공에 날려 버린 이후 잇따라 낭보가 날아온 덕분이다. 작년 11월 세계 최초로 개발한 '듀얼모드 USB 모뎀'을 올초 미국 이동통신업체인 스프린트에 공급(108억원 규모)키로 한 데 이어 일본 통신업체인 KDDI와의 수출 계약도 앞두고 있다.

#사례2.굴삭기용 파쇄장비(유압 브레이커)를 생산하는 코막중공업의 조붕구 대표는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66차례 해외출장길에 올랐다. 키코로 날린 50억원을 만회하기 위해 총대를 메고 영업 일선에 나선 것.덕분에 신규 거래선 11곳을 뚫었다. 2007년 말 외환은행과 맺었던 키코 계약이 완료된 16일 조 대표는 "지긋지긋한 악몽을 꾼 기분"이라며 "해외 거래처를 대거 발굴한 덕분에 올해 매출은 작년(190억원)보다 두 배가량 많은 4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키코라는 덫에 걸려 주춤하던 수출형 강소(强小) 기업들이 독창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로부터 대형 계약을 따내며 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불황 넘는 세계 1위 기술력

씨모텍은 지난해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 5월 키코 사태가 터지면서 한 해 영업이익의 절반을 허공에 날렸다. 2000억원에 달하던 시가총액이 700억원대로 떨어진 탓에 경영권 분쟁까지 겹쳤다. 영업을 진두지휘하던 이재만 사장은 적대적 M&A를 막는데 시간을 뺏기고,직원들 사기도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흔들리던 것도 잠시,작년 11월 개발을 완료한 듀얼 모드 USB 모뎀에 대한 '러브콜'이 잇따르면서 씨모텍은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인터넷 커버리지 지역이 단일 모드 모뎀에 비해 넓다는 점이 호평을 받은 것.듀얼 모드 모뎀은 노트북에 장착하면 와이맥스가 깔려 있는 지역에선 와이맥스 기술로 데이터를 받고,CDMA 권역에선 CDMA 방식으로 데이터를 받는 세계 유일의 제품이다.

송남용 씨모텍 CFO는 "경영권 분쟁은 종결 수순으로 가고 있고,환율 변동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겠지만 키코 피해도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며 "올해 매출은 1080억원으로 키코 피해를 입기 전인 2007년(951억원)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전문 업체인 아구스도 비슷한 경우다. 이 회사는 최근 미국 영상보안장비 유통업체와 138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2007년 매출(298억원)의 46%에 달하는 금액이다. 지난해 9월 키코 사태로 150억원의 손실을 본 뒤 극적인 반전을 이룬 것.요즘 아구스 화성공장은 납기일까지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24시간 내내 돌아간다.

'키코' 상흔 딛고 잇달아 재기

이 같은 재기의 비결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키코 사태에 휘말린 중소 기업 대부분이 월등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출 비중이 높은 업체들"이라며 "일시적인 유동성 어려움만 해소되면 금세 일어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수필름 전문업체인 상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경영진에선 "키코의 '키'자도 듣기 싫다"고 말할 정도로 아직 키코의 악몽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진 못했지만 오히려 증권가에서 '흙속의 진주'로 주목받고 있다. 작년 9월 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국책연구기관으로부터 차세대 필름 소재로 불리는 '염료감응형 태양전지' 및 '탄소나노튜브(CNT) 투명필름' 제조 기술을 이전 받기도 했다. 특히 CNT 투명전극 제조 기술을 응용한 필름은 터치스크린 핵심소재로 일본산을 대체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동휘/이정선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