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잡셰어링'이 민간 기업부문으로는 충분히 파급되지 못하고 있다.

잡셰어링이 실업 급증을 막아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갖고 있지만 조직 슬림화와 생산성이 기업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민간 기업에는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또 소득 감소를 우려하는 직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잡셰어링은 공공 부문 위주로 제한적으로 적용되면서 실질적인 고용 확대로는 연결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민간업계, 잡셰어링 `시큰둥'
민간 산업계에서는 임원 중심으로 일정 수준의 임금을 깎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일반 직원들의 임금 삭감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실제 한화그룹은 상무보 이상 전 임원이 올해 급여 10%와 성과급 전액을 자진 반납키로 했으며, 포스코 역시 전 임원이 올해 연봉의 10%를 반납키로 결의했다.

하지만 노조가 임금동결이나 감축 등을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건설업계나 자동차 부품업계 등 업황이 극도로 악화된 업종을 중심으로 직원 보수를 삭감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업계 전반적으로는 잡셰어링이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잡셰어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업체가 공감하고 있지만 실제로 도입하겠다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도 "기업들 입장에서 고려하는 것은 '고용유지형' 일자리 나누기로, 정부가 생각하는 `고용창출형' 움직임은 아직 없다"며 "현재로서는 신규 창출 여력이 크지 않다"고 전했다.

다만, 기업체별로 야근이나 연장 근무를 줄여 시간외수당을 없애거나 직원들의 휴가나 휴직, 교육 등을 장려해 임금을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 정부 정책 지원..노조 설득이 관건
잡셰어링이 민간 기업으로 속도감 있게 파급되지 못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민간 기업의 생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신규 사업을 발굴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선뜻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오히려 경제위기가 조직의 `군살'을 빼는 기회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잡셰어링이라는 신기루를 쫓아 생산성을 일부러 올리지 않고 열 사람이 할 일을 열두 사람이 나눠 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조의 반발도 넘기 어려운 과제다.

금융공기업들조차 직원 반발을 의식해 대졸 초임자의 임금을 깎아 채용을 늘리는 `꼼수'를 쓰는 상황에서 민간 노조를 설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최근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가 한국노총 소속 416개 노조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방안에 기대를 표시한 노조는 9.4%에 그쳤다.

한국노총의 김종각 정책본부장은 "가장 큰 문제는 당장 소득이 줄어드는 것"이라며 "특히 제조업은 시간당 임금으로 계산되는데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이라면 곧바로 소득이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민간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소득 감소에 대한 실질적인 보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