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50조원 상당의 매출을 올리는 LG전자.이런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신규 사업을 발굴할까. 얼핏 생각하면 사업 규모가 중요할 것 같다. 최근 매출 1조원 상당의 홈시어터 사업을 작다는 이유로 디지털디스플레이사업본부에 통합시킨 경우를 보더라도 '규모'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뜻밖에도 LG전자가 미래 신수종사업으로 육성키로 한 헬스케어(건강관리) 사업의 올해 매출목표는 300억원에 불과하다. 시장여건을 볼 때 향후 3~4년내 1조원에 도달한다는 비전도 제시하기 어렵다. 그래도 LG전자는 한다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그 프로세스를 따라가본다.


◆공기청정기 vs. 안마의자

2006년 12월 공기청정기를 파느라 여념이 없던 최규성 LG전자 부장(46)에게 호출이 왔다. LG전자 가전사업 수장인 이영하 사장이었다. "때가 왔다. " 최 부장이 어리둥절해 하자 이 사장이 말했다. "이제 헬스케어 사업이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잡는 때가 올 것 같다. 연구를 해 보라."

사장실 문을 닫고 나서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1988년 11월에 입사해 줄곧 가전제품만을 팔아오던 그에겐 '헬스케어'사업은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신사업 추진실장이라는 호칭을 달았지만 부담은 백배였다.

이 사장이 최 부장에게 넘겨준 인력은 모두 20명.최 실장은 곧바로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먼저 헬스케어 사업에서 한 발 앞선 일본으로 건너갔다. 벤치마킹 대상은 파나소닉과 히타치.공장을 돌아보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히타치의 안마의자였다. LG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로봇기술과 센서기술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싶었다. 하지만 독자 제품을 만들어내기엔 시간과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히타치와의 제휴 역시 녹록지 않았다. 히타치 제품이 한국인보다 체구가 작은 일본인 체형에 맞도록 설계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독자개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에어컨을 맡던 황선웅 박사(47)가 그렇게 신사업 추진실에 합류했다. 황 박사 휘하에 있던 20여명의 연구원들이 안마의자에 달려들었다.

그룹 원로들 '평가단'으로 활용

그로부터 1년 뒤인 2008년 12월9일 서울 논현동에 있는 LG전자 디오스갤러리.이 사장과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들의 첫 작품인 '안마의자'사업 발표회를 열었다. 반응은 반반이었다. "저거 되겠나"라는 탄식도 들렸다.

실마리는 의외의 곳에서 풀렸다. 1000만원짜리 안마의자 시제품을 그룹 내 원로들에게 보내 내부 평가를 받았다. 안마의자를 써본 원로들은 "돈 주고라도 사겠다"며 호평했다. 헬스케어 사업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순간이었다.

최 실장은 요즘 제품 상의를 위해 황 박사가 근무하는 서울 가산동에 있는 LG전자 연구소에 출근도장을 찍는다. 가정용 운동기구로 개발한 승마기와 알칼리 이온수기 제품 출시가 목전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까지 헬스케어 사업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2012년부터 하나의 사업부 규모로 다양한 사업 아이템들을 발굴해낼 것"이라며 "두고보라"는 말을 남겼다.

◆신사업은 꿈과 고민의 결정체

결국 신사업 추진에는 규모 외에 다른 변수가 있는 것이다. 바로 최고경영자의 의지와 사업 다각화에 따른 시너지다. 흔히 외부 관전자들이 놓치기 쉬운 포인트다. 거대 기업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여러가지 복잡한 소통과 의사결정 단계를 거친다. 그런 과정에서 드러나는 심각한 고민들과 원대한 꿈을 간과하는 순간 '규모의 논리'에 함몰된 외부인들은 객관적인 시각과 분석능력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따지고 보면 삼성의 반도체 사업,LG의 휴대폰사업도 출발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다. 회사 관계자는 "LG가 다양한 전자 기반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외로 시너지가 많은 사업분야"라며 "유럽 최고의 전자기업인 필립스와 미국 GE가 이미 헬스케어를 주력으로 키우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