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통화 폭락…"10년전 亞위기와 닮았다"
동유럽 국가들이 글로벌 경제에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막대한 대외부채에 의존하고 있는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은 해외 금융회사들의 자금 회수가 이어지면서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국가부도 사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헝가리 포린트화 가치는 이달 들어 유로화 대비 사상 최저인 유로당 304.25포린트까지 떨어졌다. 올 들어서만 12% 급락했다. 폴란드 즈워티화 가치도 올 들어 15% 하락하며 유로화 대비 5년 만에 최저로 내려앉았고,체코 코루나화 역시 3년 만에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제라드 리용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애널리스트는 "해외 자본 유입에 의존하는 이머징마켓은 신용경색 여파로 수출이 급감하고 외국인 직접투자가 줄어들면 해외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며 "동유럽은 이런 맥락에서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현재 동유럽 국가들의 상황이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당시 아시아 국가들은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외채로 메워가던 상황에서 급격한 해외 자본 회수가 일어나자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아야 했다. 현재 유럽 은행들이 동유럽에 투자하거나 빌려준 돈은 1조5000억달러에 달한다.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유럽 은행들이 대출을 연장해주지 않고 자금을 회수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ING파이낸셜마켓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세 나라의 대외부채는 1000억달러에 달한다. 금융시장 애널리스트들은 헝가리가 지난해 10월 IMF에 손을 벌린 데 이어 폴란드와 체코도 조만간 같은 처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유럽뿐 아니라 아일랜드도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일랜드 국채 부도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료 성격인 CDS(신용부도스와프) 가산금리는 지난 한 주 새 3배 가까이 뛰며 사상 최고치인 3.5%까지 급등했다. 이는 아일랜드 국채 100파운드가 부도날 것에 대비한 보험료가 3.5파운드라는 얘기다. 1년 전만 해도 이 비용은 100파운드당 0.1파운드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이미 IMF 구제금융을 받은 우크라이나도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13일 "금융 부문 위축이 심화되고 IMF 프로그램의 성공적 이행에 대한 위험이 커졌다"며 우크라이나 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B'로 한 계단 하향 조정했다.

유럽 전반으로도 경기침체의 골이 예상보다 깊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의 성장률은 지난해 3분기 -0.2%(전 분기 대비)에 이어 4분기에 -1.5%를 나타내 공식적인 경기침체에 빠졌다. 유로존(지난해 기준 유로화 사용 15개국)은 이미 지난해 2,3분기 연속 -0.2% 성장하며 경기침체에 진입했다. 유로존의 4분기 성장률은 -1.5%로,1999년 유로존 출범 이후 최악의 성장률을 나타냈다.

특히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4분기 -2.1%의 성장률을 보였다. 프랑스(-1.2%) 이탈리아(-1.8%) 스페인(-1.0%)등 유럽 주요 국가 대부분도 4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을 나타냈다. 유럽이 이처럼 본격적인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번 달 기준금리를 연 2.0%에서 동결했던 유럽중앙은행(ECB)이 다음 달에는 추가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