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3일 오전 한은에서 조찬 회동을 갖고 한은법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나 윤 장관과 이 총재는 경제위기 와중에 당장 한은법 개정에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좀더 시간을 갖고 치밀하게 연구하고 검토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한은법 개정 논의가 무성하다.

물가안정으로만 국한된 중앙은행의 역할을 손질하지 않고서는 향후 금융위기가 재발할 경우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 "한은법 제대로 바꾸자"
이 총재는 이날 윤 장관과 회동을 가진 뒤 "전세계적인 위기 수습 과정에서 (중앙은행법)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상호 간에) 인식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워낙 복잡한 사안이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연구.검토하자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일단 한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금 당장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이는 최근 국회에서 한은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게 나오고 있지만 사안이 중요한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선은 화급한 경제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인 뒤 한은법 개정에 대해서는 여유를 갖고 검토하자는 것이 윤 장관과 이 총재의 `합의'라는 것이다.

김규옥 재정부 대변인은 "이 총재의 발언은 한은에 금융시장 안정기능을 추가하는데 유보적이라는 의미"라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검토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한은법이 여러차례 개정되면서 누더기로 변한 측면이 있다"면서 "따라서 한은법을 개정하려면 제대로 해야된다는 것이 한은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는 "현재 금융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일단 위기극복에 노력한 뒤 어느정도 정상을 회복한 후에 각국의 중앙은행법 개정 등의 내용을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한은법 개정의 핵심 문제는
한은과 정부는 한은법 제1조의 설립 목적에 물가안정 외에 `금융안정'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수단을 확보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의견이 달라진다.

한은은 ▲긴급한 통화수축기가 아니더라도 은행 외의 금융기관에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런 지원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은행과 비은행권에 대한 검사권.자료제출 요구권 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제2금융권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한은이 금융안정 기능을 수행하려면 제2금융권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면서 "그래야 금융불안에 대해 선제적으로,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이런 한은법 개정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 한국은행에 속해 있던 은행감독원을 비롯해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 등을 통합한 민간 감독기관이 출범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한은에 다시 검사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않는다"고 말했다.

한은법 개정의 핵심 문제에 대해서는 한은과 정부간 의견차가 쉽게 좁혀지기 어렵다.

한은 관계자는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한은이 갈등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도 한은법 개정 논의는 뒤로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정치권은 적극적..한은법 개정안 잇따라
국회의원들은 한은법 개정에 적극적이다.

중앙은행의 역할을 '물가안정'으로만 묶지말고 금융시장 전반의 안정을 위해 위기시 신속하게 선제적으로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현재 여야 의원들이 제출한 8개의 한은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오는 19일 법안심의 소위원회를 열어 법안 개정을 논의를 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은법 개정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차이가 크다.

야당은 한은의 독립성에, 여당은 한은의 기능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충돌이 예상된다.

의원발의 법안 가운데 민주당의 강봉균.이광재.이성남.박영선 의원은 한은의 독립성 강화를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한은의 설립목적에 `국가의 지속적인 성장 및 발전에 기여한다'를 추가했다.

이광재 의원 법안은 중앙은행 총재의 임기를 대통령 임기보다 많은 6년으로 설정하고 한은이 정부의 간섭없이 통화신용정책을 중립적으로 수립하도록 했다.

반면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한은의 긴급유동성 지원제도를 개편하고 한은이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금융기관의 범위를 조정했다.

한은 관계자는 "여당과 야당의 한은법 개정과 관련한 속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국회내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기자 keun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