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사후적 고객(기업) 보호의무에 충실했다면 '키코'(KIKOㆍKnock-in Knock-out) 계약의 효력은 유효하다며 법원이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결정은 키코 계약을 체결한 이후 환율 등 경제상황이 예상과 달리 급변했더라도 이후에 은행이 기업 손실을 줄여주려는 노력을 했다면 키코 계약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향후 다른 기업의 가처분 결정 방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이동명)는 12일 수산중공업이 우리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키코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은행이 환율이 급등하기 전 수산중공업 측에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권유하는 등 뒤늦게나마 고객보호 의무를 다했지만 수산중공업 측이 거부한 만큼 계약 해지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은행은 환율 급등 전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기업 측에 중도청산(현재 시점의 환율로 계약을 청산하는 방법) 등의 방안을 제시했으나 기업 측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그 결과는 기업이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유비컴이 씨티은행 등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도 같은 이유로 기각했다.

법원의 이번 가처분 기각 결정에서 눈에 띄는 점은 계약 이후 경제 상황이 현저하게 달라졌어도 사후적 노력을 충실히 했다면 은행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해석한 것이다.

법원은 지난해 말 모나미 등이 SC제일은행 등을 상대로 제기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계약 이후 예상 외로 환율이 현저하게 급등했기에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므로 계약을 정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이번 결정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법원은 이번 기각 결정과 함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계약해지 인정 요건으로 △계약체결의 경위 △계약체결 이후 경제 상황의 현저한 변화 △은행의 사후적인 고객보호의무 이행 여부 및 거래 상대방의 대처 △계약 해지시 은행에 발생할 손해의 정도 등 4가지를 제시했다. 즉 은행이 계약체결 당시 충분히 위험성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고,경제 상황의 변화가 컸으며 사후적으로 고객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는 등의 사유가 충족될 때만 키코 계약의 해지를 인정하겠다는 선을 그은 것이다.

법원은 이전까지 3건의 가처분 결정에서 효력정지 신청을 한 번 받아들이고 두 번 기각했다. 그러나 이때 법원의 판단 자체는 동일했다. 3건 모두 계약 이후 상황이 현저하게 달라져 계약을 지속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점이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