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2일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내림으로써 추가적인 금리인하 여지가 크게 줄어들게 됐다.

금리를 내려도 투자.소비, 시중금리 등에 아무런 영향을 못주는 `유동성 함정'에 해당되는 기준금리가 1.5∼2.0%라는 것이 한은 안팎의 대체적인 인식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금리를 가파르게 내린 만큼 어느 정도의 속도 조절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 4개월만에 3.25%포인트 인하

이번 인하에 따른 한은의 기준금리 2.0%는 사상 최저 수준이다.

한은은 지난 1999년 통화량에서 기준금리로 통화정책 목표를 바꾼 이래 작년 9월까지 금리를 3.25% 아래로 떨어트린 적이 한번도 없었다.

3.25% 마저도 2005년 11월1일부터 한달간 유지됐을 뿐이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자 한은은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은은 ▲작년 10월9일 5.25%에서 5.00%로 0.25%포인트 ▲10월27일 4.25%로 0.75%포인트 ▲11월7일 4.0%로 0.25%포인트 ▲12월11일 3.00%로 1.0%포인트 ▲1월9일 2.00%로 0.50%포인트를 각각 내린데 이어 이 달에도 0.50% 포인트나 떨어트렸다.

4개월만에 기준금리를 3.25%포인트나 낮추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 "경기 급랭 속도 줄이자"

한은이 금리를 비교적 큰 폭인 0.50%포인트 인하한 것은 경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급랭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는 2천286만1천명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10만3천명(0.4%) 줄었다.

신규 취업자 수가 이처럼 급감한 것은 2003년 9월(-18만9천명) 이후 5년4개월만에 처음이다.

1월 수출은 지난해 1월보다 32.8% 줄어든 216억9천만 달러로, 월별 수출입 통계가 남아있는 1980년 이후 최대의 감소폭을 기록했다.

올해 전체 성장률 전망은 마이너스로 굳어졌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올해 성장률을 -2.0%로 전망했고 삼성경제연구소도 -2.4%로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의 전망치는 -4.0%다.

게다가 해외에서 날아드는 소식은 온통 부정적인 내용들이다.

최대 2조달러를 투입한다는 미국의 구제금융안은 전세계 시장을 실망시키면서 타격을 줬다.

러시아와 영국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 금통위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실물경기의 급격한 하강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 기준금리 1%대 진입하나
한은이 추가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있다.

경기가 충격적인 수준으로 추락하는데 중앙은행이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대로 인하할 수있는 폭은 0.5%포인트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적지않다.

`유동성 함정'에 해당되는 기준금리가 어느정도인지는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1.5∼2.0%라는 대체적인 인식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외환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다.

금리가 적정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초래하고 이는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린다.

다만, 전세계적으로 금리인하가 지속되고 있는 점은 한은의 이런 부담을 다소 덜어주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BOE)은 지난 5일 기준금리를 1.50%에서 1.00%로 낮췄고 유럽중앙은행은 같은 날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조만간 2.0%에서 1.5%로 낮출 전망이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지난해 12월 0∼0.25%로 떨어졌고 일본은 0.1%로 조정됐다.

◇ 전문가들 "지금은 경제 비상사태"
전문가들은 한은이 기준금리 0.5%포인트를 내린 것은 급속하게 하강하고 있는 경기를 감안한 당연한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파트장은 "0.5%포인트 인하 결정은 경기침체 때문"이라며 "통화정책의 비용.효율성이라는 측면보다는 정부의 재정지출과의 정책조합 측면이 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종우 SC제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고용 동향을 보면 현재 실물경제는 재정지출과 양적완화 정책을 총동원해야 하는 비상사태"라며 "경기침체를 감안해 0.5%포인트 인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금리를 너무 가파르게 내린 만큼 통화정책의 부작용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동준 현대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자금을 아무리 풀어도 더이상은 금리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고 자금이 돌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인하속도를 조절할 필요성은 있다"며 "이런 우려에도 금리를 대폭 내린 것은 경기에 대한 우려를 상당히 심각하게 봤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이준서 기자 keun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