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법 "자산만 노린 합병으로 볼 수 없다"

법정관리 중이던 한일합섬을 인수합병(M&A)하는 과정에서 한일합섬의 자산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로 기소된 동양그룹 현재현(60) 회장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부산지법 제6형사부(재판장 김재승 부장판사)는 10일 배임과 배임증재 혐의로 기소된 현 회장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또 추연우(50) 동양메이저 대표에 대한 배임증재 혐의와 이전철(62) 전 한일합섬 부사장에 대한 배임수재에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하고, 추 대표의 횡령 혐의만 인정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처음부터 한일합섬의 자산을 탈취할 목적으로 합병이 이뤄졌다는 검찰의 주장은 증거가 부족하고, 합병 후 피합병 회사의 자산을 처분하더라도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기업이 합병되면 피합병회사의 법인격은 소멸하고 그 권리와 의무는 합병회사에 합쳐지기 때문에 피합병 회사의 자산만을 취득하는 합병은 있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나아가 법원은 "이번 합병은 한일합섬에 일방적인 손해를 가하는 행위라고 보기 어려우며 금융당국의 통제와 규제 아래서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판단하고 "인수합병이라는 고도의 경제행위에 대해 형벌이라는 잣대의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라고 판시했다.

동양그룹이 이 전 부사장에게 한일합섬의 인수합병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대가로 19억 원을 준 혐의(배임증재와 배임수재)에 대해서도 법원은 "공개매각 정보는 이미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로 한일합섬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정보라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퇴직 보상금과 M&A 성공보수를 위법하다고 볼 증거도 없다"라고 판시했다.

현 회장은 지난 2007년 2월 추 대표와 공모해 한일합섬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회사를 합병한 뒤 한일합섬의 자산으로 이를 되갚는 차입인수 방식(LBO방식)으로 한일합섬을 인수·합병해 한일합섬 주주들에게 1천800여억 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으며, 추 대표와 이 전 부사장은 각각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검찰은 공판 과정에서 동양메이저가 한일합섬의 자산이 아닌 동양 측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한 사실이 드러나자 공소장을 배임과 배임증재 등의 혐의로 바꾸고 현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1천800억 원을 구형했다.

(부산연합뉴스) 박창수 기자 p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