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가 심화됨에 따라 통화 당국의 정책 효과가 크게 제약받고 있다.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추고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음에도 `돈맥경화' 현상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만큼 기존의 대책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금리 인하를 비롯한 기존 대책의 강도를 낮추되 시장 상황에 따라 과감한 조치들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 통화정책 효력 반감

리만브라더스 사태 이후 한국은행이 취한 조치는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으로 요약된다.

한은은 작년 9월에 5.25%였던 기준금리를 지난달 2.50%로 낮췄다.

또 총액한도대출 증액(1조 9천억원), 환매조건부채권 매매(15조 9천억원), 통안증권 중도환매(7천억원), 국고채 단순매입(1조원), 채권시장 안정펀드 지원(2조 1천억원) 등으로 21조 6천억원의 원화유동성을 공급했다.

하지만, 시중에 공급된 자금이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단기 상품에만 몰리면서 통화정책의 효과는 크게 떨어지고 있다.

양도성 예금증서(CD)나 기업어음(CP) 등 단기금리는 많이 떨어졌지만 회사채 등 장기 금리는 여전히 높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은행의 금융중개기능을 통해 단기시장에서 장기시장으로 파급되는데 은행들이 적극적인 자금운용을 꺼리다 보니 장기시장에 `온기'가 미치지 않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유동성 함정은 기준금리를 내려도 가계와 기업의 소비.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회사채나 대출 금리 등이 반응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일본은 1999년부터 `제로금리'를 시행했지만, 은행의 대출증가율은 오히려 둔화됐고 시중자금은 빠르게 단기부동화됐다.

따라서 현재의 국내 금융시장도 미약한 수준에서 유동성 함정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 금리인하 속도조절 가능성

한은 내부에서는 기준금리가 2% 아래로 낮아지면 통화정책의 효력은 더욱 크게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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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도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인하 폭이 0.25%포인트로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금리를 마냥 낮출 수 있는 시점은 아니다"라면서 "기준금리를 끝까지 내리기보다는 금리인하 효과가 확산되는 움직임을 기다리면서 부실채권 매입, 기업 구조조정 지원 등 보다 다변화된 정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급격한 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실물경제다.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논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감하고 통상적이지 않은 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지원 JP모건체이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금리인하 속도를 조절하되 선별적인 유동성 공급을 통해 실물 쪽으로 자금이 흐르도록 할 방안을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