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가장 '큰손'인 국민연금은 증시 하락을 막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장기 보유가 원칙이어서 한 번 산 주식은 좀처럼 팔지 않는다. 그런 국민연금이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맞물려 '어쩔 수 없다'며 보유 주식을 대거 내다팔고 있다.

◆비현실적인 대량보유 보고의무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의 4.5%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5% 이상 지분을 가진 주식을 보고하라고 하면 전체의 30% 정도가 보고의무 대상이 된다.

이렇게 되면 월평균 40~50건의 보고를 해야 한다. 그나마 운용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기가 더 힘들어진다.

더 큰 문제는 시장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기금의 투자내역 공개는 개인이나 외국인 투자자의 추종 매매를 볼러올 것이 뻔하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래에셋이 지분변동 내역을 매월 초 공시했을 때도 추종 매매가 상당했는데 국민연금이 한다면 그 정도가 훨씬 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연금의 매매전략이 그대로 노출돼 목표수익률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우려된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주식 비중을 줄이게 되고 이는 국내 증시의 자금조달 능력을 떨어뜨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에 예외조항 필요

국민연금은 우선 파괴력이 상대적으로 더 클 것으로 예상되는 10% 이상 보유 지분 주식을 내다팔아 보유 내역을 숨기기로 했다.

실적 악화 등의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자통법 시행에 따른 대량보유지분 보유 상황 보고를 피하기 위해 다른 투자자들에게 피치 못할 피해를 준다고도 볼 수 있다.

국민연금에 적용되는 조항이 바뀌지 않는다면 5% 이상 보유 주식에 대해서도 매도를 검토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코스닥 등의 시가총액이 낮은 종목의 경우 조금만 매입해도 5%를 넘을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신규 매수를 엄두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에 적용된 과도한 보고 의무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 이상 보고는 어차피 적대적 M&A(인수합병) 등을 막자는 취지인 데,경영권 획득 목적이 없는 단순투자자인 국민연금에 과잉 규제를 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면 채권과 해외 주식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기금배분의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 국민연금 전문가는 "해외에서와 달리 한국에서는 전세계 4대 연기금에 포함되는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대량보유 지분 보고의무를 획일적으로 적용해서는 곤란하다"며 "국민연금이 경제위기 속에 제대로된 역할을 할 수 있게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