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제지…본 계약후 실사과정서 추가 부실 발생, 인수가 낮춰주면 전액 재투자 약속
채권단…이자비용 경감ㆍ차입금 만기연장, 당장 손해봐도 멀리보고 '통큰양보'

최근 경기침체로 대형 인수 · 합병(M&A)이 잇따라 무산되는 상황에서 한솔제지가 이엔페이퍼를 본계약 금액의 27%인 150억원을 깎으면서 391억원에 인수하는 데 성공한 요인은 무엇일까. 정확한 실사를 통해 피인수기업의 부실을 파악한 데다 국일제지와 채권단 등 이해 당사자 모두가 이익을 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었기 때문으로 요약된다. 3일 한솔제지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본계약 당시 이엔페이퍼를 541억원(지분 39.19%,933만주)에 인수키로 했으나 최종 실사과정에서 급격한 경영부실 요인을 발견했다.

이엔페이퍼가 펄프 수입대금을 은행 측이 대신 지급하고 일정 기간 후 갚는 방식으로 결제했던 '유산스'가 환율 급등으로 엄청난 환차손을 보게 된 것.한솔 측은 인수대금을 150억원 낮춰 채권단에 제시했다. 한솔 측은 인수금액을 이같이 조정하지 않고는 이엔페이퍼의 재무구조 건전화 및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 발휘,제지산업 경쟁력 확보가 물 건너 간다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매각 주체인 국일제지(27.43%),주채권 은행인 신한은행(11.76%) 등과 인수금액 재조정을 위한 협상이 본격화됐다. 물론 채권단은 '당초 매각 추진 당시 산정한 주당가격(5800원)을 낮출 수 없다"는 원칙론을 고수했다.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자 한솔 측은 '역지사지'의 논리를 내세웠다. 한솔 측은 "추가 부실이 드러난 만큼 본계약 금액으론 살 수 없다. 협상이 깨지면 이엔페이퍼의 지분과 채권을 갖고 있는 채권단도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설득에 나섰다. 인쇄용지시장이 불황인 상황에서 이엔페이퍼의 합병이 늦어질수록 자생력 확보가 더 힘들어질 것인 만큼 가격 차이로 인한 매각 중단은 채권단의 이익에 반할 뿐이라는 대목도 부각시켰다.

결국 20여 차례의 물밑 접촉 끝에 채권단도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존 매각금액을 고집하기보다는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최종 인수가격은 주당 4192원.채권단은 골치 아픈 이엔페이퍼 지분을 털어버릴 수 있는 데다 한솔이 이엔페이퍼를 정상화시킬 경우 차입금 회수 가능성도 한층 높아진다는 점도 감안했다. 채권단은 이와 함께 이엔페이퍼의 이자비용 경감(8%대에서 6%대로)과 차입금(약 2000억원 선) 만기연장에도 동의해줬다.

이 같은 결정에 한솔제지도 화답했다. 당초 인수금액에서 깎은 150억원을 이엔페이퍼의 재무구조 개선(유상증자)에 재투자하기로 했다. 여기에 신한은행도 200억원을 내놓기로 했다. 한솔 입장에선 충분한 실탄까지 마련돼 이엔페이퍼의 정상화 작업이 한층 쉬워지게 된 것.

한편 한솔제지의 이엔페이퍼 인수는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한솔제지 주가는 전날에 이어 이날 3.24% 오른 9550원을,이엔페이퍼는 9.36% 오른 1870원을 기록했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