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우 삼성전기 신임 사장은 지난 2일 부임과 함께 부산행 비행기에 올랐다. 송정동 녹산공단내 공장을 직접 둘러보고 현장에서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서였다. 박 사장은 "현장 파악이 먼저"라며 취임식도 뒤로 미뤘다. 다음 주엔 수원과 대전공장을 돌아보기로 했다. 취임식도 생략하고 사내 메일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취임사를 돌렸다. 임직원들에게 강조한 것은 단 한마디."강한 삼성전기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뉴삼성호(號)'가 변화의 닻을 올렸다. 삼성의 각 계열사를 이끌 신임 CEO(최고경영자)들은 취임과 함께 현장을 돌며 불황 돌파를 위한 기반 다지기에 나섰다. 뉴삼성의 새로운 모습을 신임 CEO들의 행보를 통해 짚어 본다.

◆혁신정도로는 안된다

부임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간 CEO는 박 사장뿐만이 아니었다. 2006년부터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삼성석유화학을 이끌게 된 윤순봉 사장은 지난달 28일 울산 사업장으로 달려갔다. 이튿날 서산사업장을 들른 뒤 서울로 돌아와 부서별 업무보고를 받는 강행군을 했다. 임직원들에겐 "평소 하던대로 업무에 매진하라"는 짧은 말만 남겼다.

윤 사장은 경영혁신을 한답시고 거창한 슬로건을 거는 일도,캠페인을 벌이는 일도 모두 하지 않기로 했다. 위기를 넘기 위해서는 기업문화를 바꾸는 혁신 정도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현장을 돌아본 윤 사장은 "비효율을 즉각 개선하고 돈이 보이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나의 몫"이라며 "CEO로서 직원 업무의 성과와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만반의 지원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준희 에스원 사장은 지난 2일 월례조회를 통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영업현장을 중시하는 사고로 철저하게 무장해야 한다"며 현장중심 경영 의지를 다졌다.
삼성신임 CEO들 "돈 보이는 사업 잡는다"
유석렬 삼성토탈 사장도 같은 날 충남 대산에 내려가 업무보고를 받았다. 유 사장은 "옵티마이제이션(최적화)을 통해 전체 공장 단지의 수익성을 맞춰야 한다"며 실용경영으로 석유화학 산업의 어려움을 넘어서겠다고 밝혔다.

◆초심으로 돌아가라

삼성SDS와 삼성네트웍스를 휘하에 두게 된 김인 사장은 '지렛대 경영'이란 말로 두 조직의 통합경영 전략을 풀어놨다. 지렛대를 이용해 작은 힘으로도 큰 바위를 들어올릴 수 있는 것처럼 '선택과 집중'전략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창출해 열악한 경영환경을 극복해내겠다는 설명이다. 김 사장은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진정한 저력을 보여주자"며 임직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황백 제일모직 사장은 지난달 22일 경기도 의왕에 있는 R&D(연구 · 개발)센터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화학 · 전자재료 사업에서 R&D 투자를 늘려나가 글로벌 톱으로 변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황 사장은 이날 행사에서 "남다른 생각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10년 후에도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며 "미래 연구활동을 활성화해 체계적으로 대비해 나가자"고 주문했다.

삼성전자에서 삼성카드로 자리를 옮긴 최도석 사장은 '수익원 다변화'를 우선과제로 정했다. 글로벌 경영위기로 정체상태에 놓인 금융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신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조직문화를 바꿔라

삼성SDI와 삼성전자가 합작해 세운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의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된 강호문 사장은 미래 시장 공략을 위해 조직문화 통합과 안정을 첫 번째로 꼽았다. '꿈의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AM OLED(능동형 유기 발광다이오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삼성의 2개 전자계열사 사업부가 힘을 합친 만큼 어느 때보다도 강한 조직통합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헌식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은 "문제해결 DNA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계획을 차질없이 달성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박오규 삼성BP화학 사장은 최근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 "현상을 부정하라"는 말을 던졌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되돌아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경영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박 사장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회사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김현예/안정락/이정호 기자 yeah@hankyung.com